몇 주 전 나는 참 의미있는 모임에 참가했다. 아름답다는 말을 그 어떤 다른 말로도 표현 못할 정도로 수려한 강원도 미선계곡에 위치한 개인 산방에서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면서 세상 이해를 넓히고, 다음날은 아침가리골이라는 숨겨진 비경을 트레킹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오늘 이글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이 선생님’이라 부르는 한 분의 아름다운 노후를 소개하려는 것이다. 이 선생님은 중앙 일간지 기자를 지냈고 그 후 모 인터넷 신문을 창립한 후 지금은 고문으로 활동 중인 분이다. 그런데 나를 감동시킨 것은 과거 직업이나 현재 위치가 아니라 은퇴 후 삶을 꾸리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선생님은 이 모임의 직함이 고문이지만 실제로는 기획은 물론 실무자처럼 참가자 모집을 위한 인터넷 글 올리기부터 자료 찾고, 메일 보내고, 약도 보내고, 참가하는 동안 편히 지내도록 배려하고, 도와주는 모든 일을 도맞아 하고 있다. 매월 1회 약 30여 명이 모이는 이 모임은 토요일 오후 만나 산책하고 자기와 대화 나누기를 시작으로 저녁에는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사람이 30여명 모이면 크고 작은 일이 생기지만 이 선생님은 정말 즐겁고 신나게 이 일을 하신다. 내가 조금 더 놀란 것은 이 모임은 거의 매회 적자이지만 지난 몇 년 간 꾸준히 모임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가자에게 최대한 편의와 정보, 그리고 편안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려 애쓰는 젊은 은퇴자(?)의 모습은 성숙한 은퇴자의 그 모습이었다. 내 삶의 목표이기도 하고….
리처드(Reichard)와 그의 동료들은 은퇴한 많은 노인의 행동을 연구한 결과 다음 다섯가지 적응 유형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성숙형은 은퇴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과거의 실패와 성공도 사실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형이다. 자기 자신의 일생을 매우 값진 삶으로 느끼고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은퇴 후에도 일상 생활을 매우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경우로 주변 사람 및 가족들과 관계도 유연하고 성숙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이다.
은둔형은 일생의 무거운 책임을 벗어 던지고 복잡한 대인 관계와 사회 활동에서 해방되어 은퇴 후 조용하게 지내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자신의 역할을 점차 축소시키고 개인적 생활을 향유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유형이다.
무장형은 도리어 은퇴를 하면서 사회적 소외와 늙어감에 대한 불안을 방어하기 위해 사회적 활동과 기능을 유지 확대하는 형으로 노화에 대한 적응력이 조금 부족한 유형이다.
분노형은 젊은 시절 인생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늙어버림에 대해서 비통해하고 모든 원인을 자신 속에서 찾기보다는 외부 요인, 즉 가족, 경제사정, 사회에 돌림으로써 남을 질책하고 늙음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형이다.
마지막으로 자학형이 있다. 분노형과는 달리 인생 실패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 나이가 많아질수록 스스로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여기고 대부분 관계를 끊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심한 경우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는 형으로 모든 유형 중 은퇴에 대한 적응이 가장 낮은 유형이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또 늙어간다. 언젠가는 지금의 자리를 누군가에게 내주고 돌아서야 한다. 인생 삼모작을 해야하는 시기에 어떤 모습일지는 오늘의 내 삶의 모습이 결정할 것이다. 이 선생님처럼 내 평생하고 싶었던 일을 내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 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늘 열심히 사는 결과일 것이다.
/ 한 옥 자 수원가족지원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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