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때문에 미인이 많다고 할 정도로 경북 대구는 예전부터 유명한 사과의 주산지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요즈음 대구 사과의 지명도는 예전에 비하여 낮아진 것 같다. 그 이유는 도시화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기온이 전반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의 최저 기온이 영하 10℃ 이하로 내려간 날이 1960년대는 11.3일인 반면 1990년대는 3.8일로 줄었으며, 한밤 기온이 25℃를 넘는 열대야는 두 기간동안 4월2일에서 8월2일로 늘어났다고 한다. 또 지난 100년간 한반도의 평균 기온이 2℃ 높아졌지만, 앞으로 100년간은 5~6℃ 정도 높아질 것이라고도 한다. 기온이 높아지고 있고, 그 속도는 점차 더 빨라진다는 것이다.
벌써 기온 상승으로 인한 우리의 삶과 환경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농업부문에서 느껴지는 변화는 더욱 크다. 요즈음 사과의 유명 산지는 대구보다 고위도인 곳이며, 이들 지역에서도 해발 400m 이상인 곳에서 좋은 사과가 생산되고 있다. 원예연구소에 따르면 평균 기온이 현재보다 2℃만 올라도 남한의 대부분 지역은 사과재배에 부적절한 지역이 되고, 지금까지는 너무 추워서 사과를 재배하지 않았던 강원도와 백두대간에서 좋은 사과가 생산될 것이라고 한다.
사과뿐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제주에서만 생산된다고 알려져 있는 한라봉도 남해안 지역에서 재배가 늘고 있으며, 복분자딸기, 참다래의 산지도 변해가고 있다. 우리나라 소나무의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재선충도 이를 옮기는 솔수염하늘소가 따뜻해지는 온도에 편승하여 그 활동 영역을 남부에서 중부로 급속히 확대해 가기에 더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기상변화가 일어나는 원인은 도시화, 프레온 가스와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 화석 연료 사용, 산림 훼손과 대형 산불 등이다. 앞으로 기상의 변화가 우리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점차 커질 것이고, 어느 순간 우리가 감내해내지 못할 수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민족의 정체성은 그 민족이 뿌리를 내린 곳의 기후와 풍토, 그리고 그 곳에서 나는 농산물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당대의 민족 구성원은 그 것을 성공적으로 후대에 전달하기위하여 노력할 의무가 있으며, 그리할 때 비로소 한 민족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급속한 기상 변화를 예방하고, 또 그 변화에 대응하는데 국가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강 상 헌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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