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음악계에서 최근 서로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음악가는 홍난파와 윤이상이다. 윤이상은 현재까지 세계음악계에 가장 잘 알려진 한국의 작곡가이다. 그는 살아있을 당시 이미 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인정을 받은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남북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상황은 그에게 비극적 흔적을 남겼다. 1967년 이른바 ‘동베를린 공작단 사건’이라는 누명을 쓰고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강제 납치되어 모진 고문과 가혹한 수형 생활을 당했으나, 세계음악계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2년 만에 형집행정지로 독일로 돌아가서 끝내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후 북한의 음악발전에 힘썼고 윤이상음악연구소는 평양에 있다. 올해는 ‘용의 귀환’이라는 타이틀로 윤이상 평화재단이 설립되어 지난 3월18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창립기념식과 기념 연주를 하였다. 그의 명예회복의 시작이고 상처 입은 용의 승천이다.
홍난파는 우리나라의 최초의 작곡가이며 바이올리니스트이고 지휘자인데 그의 본명은 홍영후이다. ‘봉선화’ ‘금강에 살어리랏다’ ‘봄처녀’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와 같은 가곡과 ‘달마중’ ‘낮에 나온 반달’ ‘고향의 봄’과 같은 동요를 통해 해방 이후의 음악 교과서를 통해 한국인에게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일적인 활동이 이제 문제가 되고 있다. 두 분은 공통적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유학을 하였고 홍난파는 동경음악학교에, 윤이상은 오사카음악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우리의 위대한 음악가들이 이제는 서로 다른 평가를 받는다, 이념 때문에 금기되었던 윤이상은 민족의 영웅이 되고,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웠던 음악교과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노래를 만드신 홍난파는 친일파로 낙인되어 가는데, 검증되는 시간이 너무 짧아 정치논리라는 의구심도 생긴다. 며칠전 어린이날인 5일 도쿄 NHK 홀에서 일본 NHK교향악단은 ‘봉선화’를 앙코르곡으로 연주하였는데 암울했던 일제시대, 한민족의 서글픈 운명을 빗대 불렀던 이 노래의 선택은 NHK교향악단 단원들이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미래 세대에 ‘한·일 우정’ 의 참뜻을 일러주기 위해서 였다.
난파생가는 화성시 남양읍 활초리에 있고 21일에 제7회 난파생가음악회가 열리는데 필자는 난파합창단과 화성시 청소년교향악단의 지휘를 한다. 어릴 때 배웠던 노래의 추억에 잠기며 우리 민족의 어두웠던 과거를 떠올리며 더욱 열심히 연주자의 길을 걷겠다는 각오를 가지면서….
/윤 왕 로 화성청소년오케스트라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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