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나선형으로 진전한다’ 20세기의 역사학 태두 토인비 말이다. 나사 바퀴가 한 바퀴 돌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다만 층(차원)이 다를 뿐이다. 그는 역사의 진전을 이렇게 설파했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미·일·중·러 열강들의 역학 관계가 100년전 구한말의 정세와 흡사하여 매우 걱정된다”는 독자의 편지는 토인비의 말을 생각케 한다. 다만 차원(층)이 다른 점은 있다. 우선 한반도의 분단을 들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간접 영향권, 그리고 미·일·중이 벌이는 직접 영향권의 각축전은 100년전을 연상케 한다. 여기서 또 언짢은 변화는 한·미 관계의 악화다.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동맹관계) 변화는 구한말에 일본의 조선 병탄을 묵인키로한 ‘미·일 밀약설’을 떠올린다.(“한국이 원하지 않으면 미국은 언제든 떠날 준비는 돼 있다”는 말은 힐 미 국무성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주한 미 대사 때 공식으로 직접 들려준 말이다)
장차 한·미 동맹의 반파나 완파가 만약에 있게되면 미국은 일본과 중국의 동아시아 패권 다툼에서 일본을 밀어 중국을 견제할 것이 분명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가 이를 전망케 한다. 대통령은 중국을 선호하는 것 같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곧 중국 중심의 판도를 의미한다.(미국은 점점 멀어져 가다가 절로 떨어져 나가게 된다)
이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한·미동맹 속에 한다지만 말잔치일 뿐이다. 한·미 관계에 이상이 없다는 정부 발표는 한·미동맹에 이상이 많다는 반증이다. 금이 간지 오래다. 미 전략문제연구소 역시 한·미동맹은 겉과 속이 다름으로써 유발되는 혼란을 시인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한국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미국측 관점이다. 미2사단을 감축 통합하는 것은 전세계 미군 재배치에 따른 불변의 주한미군 재조정 과제다. 대신 전력 증강의 보완책이 서 있었다. 150개 분야의 전력을 증강하고 스트라이크여단 및 고속 함선을 재배치 한다는 것이 지난해 11월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이 공석 면전에서 들려 준 주한미군 전력 증강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다. 미국은 전쟁 대비 비축 탄약마저 빼가겠다는 등 한·미간 군사 현안마다 입장을 달리하는 대립각으로 나온다. 미국의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유는 예의 동북아 균형론이 결정적 분기점이다. 미국과 소원해도 잘 살 수 있다면 얼마든 지 그래도 상관이 없다. 역대 대통령마다 새로 취임하면 백악관을 찾는 관행부터가 아니꼽다. 겉으론 미국의 국빈 맞이 이지만 속으로는 새 대통령의 문안 조공이다.
미국은 국내 기업의 최대 수출국이다. 자동차 수출 하나만 제한하여도 국내 경제가 흔들린다. 실업자가 속출한다. 국제사회의 신인도 또한 미국과의 유대 관계가 작용된다. 남북간의 군사 대치에서 남한만의 군사력으로는 역부족이다.(남한은 사회복지비를 확충한 대신 북은 군사대국의 확충에 힘썼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니꼬워도 미국을 더불어 이용해야 하는 연유가 이에 있다.(만약 미군이 철군하면 국내에 투자된 외자도 대거 일탈한다)
노 대통령이 주장하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역할론은 북의 전쟁 도발 억제 수단으로 볼 순 있다.(당장은 6자회담 복귀를 위한 압박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중국과 실리외교 관계를 추진한다 해도 중국이 북측보다 남한을 우선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동북아 균형론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 역할의 실체가 안 보인다. 말인즉슨 그럴듯 하지만 말 뿐인 게 동북아 역할론이다.
대통령은 독일 방문에서 “북의 개혁 개방 비용을 부담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으나 평양 정권이 개혁 개방을 제한하는 것은 돈이 들어서가 아니다. 사회주의 개혁 개방의 모델이 되는 중국식으로만 해도 김일성주의의 체제 붕괴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빗장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벼랑끝 외교 전술을 이래서 생존 수단으로 삼고 있는 북은 항상 우리에겐 위협의 대상이다.
동북아 균형론은 한반도의 통일 이후에나 가능한 소리다. 역대 정부가 국가안보를 다자틀로 추구한 것은 합리적이다. 미국을 굳이 외면하지 않고도 추구할 수 있는 것이 다자틀이다. 미국을 실속없이 모나게 비위상하게 한다하여 돌아오는 국익은 아무 것도 없다.
이 정권 들어 심화된 반미감정은 미국의 반한감정을 불러 일으켜 한·미동맹의 균열은 겉보기보다 심각하다.(북의 입장에선 결정적 남반부 해방의 혁명 시기가 점차 성숙되어 간다) 북이 6자회담 복귀를 이 구실 저 구실로 늦추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0년 전의 한반도 주변 상황을 방불케하는 열강을 견제하는 길은 미우나 고우나 한·미동맹의 복원에 있다. 이 만이 또 동북아 정세의 균형을 유지할 수가 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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