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간접선거를 통해 학부모 운영위원을 선출했다. 전체 학부모가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학년별로 날짜를 달리하여 교내식당에서 학부모 총회를 무리없이 했으니 정작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학부모들로서는 알 수가 없다.
매년 이맘때마다 학교운영위원(학운위원) 선출을 둘러싸고 이런 말과 저런 이야기가 많이 오간다. 올해는 학부모위원 간접선거에 따른 뒷말들이 도내 각 지역의 여러 학교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 학교들은 대개 간선제 채택의 불가피함을 이렇게 설명한다. 학교 규모는 초대형인데 총회를 할만한 강당이 없다, 학부모가 직선제를 선호하지 않는다, 학년초라서 학교가 경황이 없고 준비하는 게 힘들다 등등.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이유와는 달리, 학교장이 1년간 ‘편안하게’(?)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자기 ‘입맛’에 맞는 학부모를 참여시키려는 의도에서 간선제가 계속 행해진다고 한다. 더구나 다음달에 있을 교육감 선거에서 소중한(?) 표를 확보할 ‘내사람 심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런 발상과 편법은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다. 학운위의 설치 목적에도 어긋나며 그 취지를 크게 훼손시키기 때문이다. 단위학교는 물론 우리 경기도의 교육발전에도 암적(癌的) 요소다.
7년째 학운위원으로 활동하는 필자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학부모위원 간선제는 세 가지의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앞서 본 것처럼 학교장이나 학교측의 자의(恣意)에 의해 학부모가 휘둘리고 조종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학부모간에도 ‘끼리끼리 집단’이 형성되어 ‘밀어주고 당겨주는’ 담합행위를 함으로써 대의제를 왜곡시킨다. 이와 함께, 학부모의 대표성 확보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즉 자녀가 학급의 대표이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학부모들이 학급별 대의원으로 대부분 선출되고 학운위원이 됨으로써, 아이의 학업이 뒤처지고 ‘왕따’를 당하거나 가정이 어려운 학부모들의 참여는 구조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학부모 총회를 통해 학부모 대표를 직접 선출하지 못할 이유는 사실상 없다. 교내에 전체 학부모가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없으면 외부의 공공 시설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것도 곤란하다면, 학교 홈페이지나 자녀의 학급에서 CCTV를 통해 소견발표를 듣고 우편투표나 직접 투표를 할 수도 있다.
귀찮다, 어렵다, 복잡하다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학교가 교직원 위주의 사고와 행정편의주의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1년에 한 번 어렵게 학교에 나오는 학부모들에게, 멋진 총회를 ‘기꺼이’ 열어주는 서비스 정도는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
간선제를 하는 학교는 우리 학부모들이 스스로 나서서 학교운영위원회 규정을 직선제로 고치도록 강력히 요구하자. 이와 함께, 도교육청에서도 간선제 실시 학교는 그 합당한 사유를 보고케 하고, 선출과정에서 불미스런 일이나 잡음이 없도록 특별 행정지도와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사항을 조례에도 명문화하고, 정부는 간선제 근거가 되고 있는 교육법시행령 제59조 제2항의 단서조항을 폐지하여 진정한 학교자치를 보장해야 마땅하다.
학운위는 학부모와 교원, 지역인사 등 다양한 교육주체들이 각각 그 대표성을 띠고 참여, 활발히 토론하고 대안을 모색하며 건전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 본령이다. 따라서 다른 생각을 차단하며 반대 의견을 억누르고 배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일부의 반대 그룹이나 강성 멤버도 공식적으로 참여시켜 문제를 조기에 파악하고 갈등을 완화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 학교경영자는 ‘쉽게 가겠다’는 편법보다는, 열린 자세로 경청하고 토론하고 설득하여 합의를 이끌어 내는 진정한 리더십과 자신감을 발휘해야 한다.
/김 장 중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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