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사랑은 국기 사랑이며 국기 사랑은 나라 사랑이다. 독도 열기의 나라사랑 구심체 또한 태극기로 상징된다. 국기인 태극기는 민족정신의 표상이다. 고종 19년(1882년) 일본에 수신사로 간 박영효가 처음 사용하고, 이듬해 정식으로 국기로 채택되어 공포됐다는 것이 내가 아는 태극기 유래의 전부다. 더 보태면 건국후 1949년 문교부 고시로 지금의 태극기 제식으로 결정된 사실이다.
그러나 청홍의 태극 문양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온 민족혼이다. 우주 만물이 생긴 근원으로 보는 것이 곧 태극 문양이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에 감은사란 절터가 있다. 신라 통일 직후인 신문왕 때 통일의 영주인 문무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절이다. 1천320여년 전이다. 지금은 절터만 남았지만 화강암 기단석에 양각된 태극 문양은 아직도 선명하다. 우리 민족은 이미 오래 전부터 태극 문양을 이처럼 민족혼으로 신앙해 왔음을 알 수가 있다. 박영효가 태극기를 만든 것은 전래의 이런 민족혼을 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태극기는 118년전에 미국의 수도 워싱턴 창공에 이미 휘날렸다. 1887년 당시 조선 주미공사관의 돔 모양으로 된 지붕위 기봉에서 태극기가 펄럭였다. 1920년 청산리전투는 북로군정서 독립군 2개 중대가 일본군 1만여 명을 상대로 싸워 대첩을 이룬 세계전사상 드문 격전으로 꼽힌다. 일군에게 3천3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게 했으면서 독립군의 피해는 100여 명에 그쳤다. 이 때 김좌진 장군이 진두 지휘하는 군기는 곧 태극기였다.
3·1독립만세운동, 상해임시정부, 윤봉길·이봉창의사, 광복전후, 6·25동란 때 학도병들이 혈서로 자원입대한 태극기 등 실로 수많은 태극기가 있다. 인상 깊은 또 하나의 태극기는 1948년 5월 북한 노동절 행사에 걸린 태극기다. 단상 요인석 뒤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북한은 그해 9월 인공을 건국하면서 인공기를 만들었으나 그 전까지는 이처럼 태극기를 썼다. 지금까지 밝힌 태극기 얘기는 내가 알고 있었던 게 아니고 ‘광복 60주년 기념, 태극기 변천사 전시회’장에서 본 걸 전하는 것이다.
지난 1일 경기문화재단 2층에서 시작된 전시회는 이달 말까지 계속된다. ‘대한 태극기 사랑 운동본부’ 박주형 본부장이 개최했다. 그는 35년 동안 태극기를 연구하면서 태극기 변천 과정의 소중한 사진 자료를 입수해 온 100여 점을 이번 전시회에 출품했다. 태극기에 관한한 가히 ‘박사’다.
‘태극기 박사’는 (사)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수원시지회 자문위원으로 필자와 같이 있어 마지 못해 체면 치레로 전시회장에 갔다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실로 큰 감명을 받았다. 좀 더 큰 전시장에 상시로 전시하는 것이 ‘태극기 박사’가 애로사항으로 밝힌 간절한 소망이다. 홀 같은 전시장이 아니면 복도같은 곳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월드컵구장도 좋고, 도서관도 좋고, 종합운동장도 좋고, 아무튼 사람 많이 모인 곳이면 전시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태극기 사랑이며 나라 사랑의 길이라고 믿어진다. 일반 시민도 그렇지만 특히 청소년 학생들에겐 더 할 수 없이 좋은 체험적 전시공간이 될 것으로 보아진다.
올 2005년은 ‘경기방문의 해’다. 수원에 온 외지인들이 이같이 특이한 ‘태극기 박물관’ 같은 전시 공간을 만나게 해주는 것도 긍지를 갖고 보여줄 만 하다. ‘태극기 박사’는 다만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수집한 태극기 자료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기를 바라는 게 소박한 꿈으로 보인다. 희귀 자료의 태극기 사진 전시가 공공 장소에서 상설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보고 싶다.
/이 지 현 (사)한길봉사회 경기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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