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서초동 카톨릭 간호대 봉사부에 ‘사별가족모임’이 있다. 카톨릭 의대의 의학 연구를 위해 시신을 기증한 유족들 모임이다. 대개는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의 시신을 기증했지만 부부가 함께 사후 기증해 놓은 예가 많다. 결국은 부부가 같은 길을 가지만 살아 남은 쪽이 당장 겪고 있는 사별의 고통이 없을 수 없다. 봉사부에선 ‘사별가족나눔지’를 발행한다. 다음의 시는 나눔지 7호(3월17일자)에 실린 전문이다.
‘나로 인한 불행에게 하늘에서’(죽은 나로 인해 불행을 겪는 당신에게 하늘에서 보낸다는 뜻-필자 주석-)
보고 싶은 당신 / 나 지금 이렇게 당신이 그립습니다 / 당신이 너무 멀리 있어 당신이 그리운 날입니다.
내 속에 당신있고 / 당신 속에 내가 있어 / 우리는 하나인 것을 / 그래서 당신이 더 그리운 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더욱 / 이렇게 가슴 저려서 / 당신이 그리워서 /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 / 당신 옆에서 서성거렸습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만큼 / 당신도 날 그리워하고 있어서 / 나는 당신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나에 대한 그리움으로 / 밤새 잠도 설치고 울고 있어서 / 그리운 님 당신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꿈속에 찾아가 / 이젠 편히 살라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 그리운 당신의 기억에서 이제 내가 / 잊혀지기를 원한다면 거짓이겠지만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 고통과 아픔 속에서만 산다면 / 나 역시 당신 곁을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 우리의 인연은 짧았지만 / 당신을 사랑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 그리움에 살고 있는 당신을 보면서 /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 애타는 마음을 전할 수 없어 / 이 마음 또한 고통스럽습니다 / 이 생애에서의 인연은 짧았지만 / 언젠가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내가 쉬고 있는 이곳에서 / 당신을 만날 수 있다면 / 살아서 못 다한 사랑 모두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편히 사십 시요 / 이제 당신이 편한 밤을 자기를 바랍니다.
하늘에서…
이 시를 실은 나눔지엔 먼저 간 배필에게 산 사람이 보내는 시가 ‘늘 당신이 있었습니다’란 제목으로 또 실렸다.
내가 돌아가는 길엔 / 늘 당신이 있었습니다.
멀리 손짓을 하며 서 있기도 하고 / 이 따금씩 지쳐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내 곁엔 늘 당신이 있었습니다 / 낯 익은 모습으로 당신이 있었습니다.
내가 잠시 당신을 등지고 떠나 있는 날에도 / 당신은 두 손 꼭 쥔 채 / 늘 있던 곳에 있었습니다.
내가 되돌아와 당신을 보았을 때 / 눈물 머금은 당신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내가 만들어 놓은 그 자리에 / 당신이 있었습니다 / 이제 보니 당신은 나의 그림자였나 봅니다.
내가 힘겨워 하면 / 그만큼 당신 지친 모습 보이고 / 내가 슬며시 웃음 보이면 / 그만큼 즐거워 하는 당신은 / 또 하나의 나였나 봅니다.
내 곁에는 지금도 그런 당신이 있습니다.
위의 두 시는 죽은 배필이 산 사람에게, 산 사람이 죽은 배필에게 보내는 애틋한 사랑이 짙게 농축돼 있다. 유명을 달리하는 죽음,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서는 부부의 사별은 누구에게든 이처럼 애처롭다. 생전에 살 땐, 살다보면 다투는 것 또한 부부다. 미워할 때도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사별을 당하고 나서 비로소 그 모든 게 부부애였음이 확인되면서, 고독 속에 새삼 가슴 저미는 어리석음을 인간은 갖는다.
안익태 선생의 미망인 롤리타 안 여사가 동수원초등학교 음악회에서 애국가가 합창되자 두손으로 백발의 노안을 감싸며 터뜨린 오열, 그건 복받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잘 났건 못 났건, 잘 살든 못 살든 부부의 정이란 다 같다. 세파를 헤쳐가노라면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용서하지 못할 게 없는 것이 부부다.
‘사별가족 나눔지’의 시를 읽으면 부부가 해로하고 있는 그 자체가 더 할 수 없이 큰 행복이다. 사별가족들은 매월 셋째 주 목요일 정오에 카톨릭 의대 대학성당이 올리는 시신 기증자의 위령 미사에 참석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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