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종 칼럼/‘커리어 우먼’과 ‘아줌마’

최근 지역 언론에 ‘경기도가 여성인력을 활용하고 양성평등에 앞장서겠다고 도 출연기관에 여성 취업할당제를 적용했지만 대부분 기관들이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나마 ‘경기도문화의 전당’이 35.7%로 가장 많은 여성인력을 채용한 것을 빼고는 30~20%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각 분야에서 자기 실력을 인정받고 뛰는 ‘커리어 우먼’의 숫자가 미미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기도뿐만 아니라 가부장 권력이 지배하는 이 사회 전체가 용납하는 ‘커리어 우먼’은 전체 여성인구에 비례해 아주 적다.

남성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권력의 부스러기 중 일부만 나누어준 셈이다. 따라서 가부장권력 사회는 남성권력이 위협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커리어 우먼을 인정하고 키운다. 나머지는 대다수가 가사 일에 전념하는 아줌마다.

아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은 가부장이 일터로 나간 집을 지키고 육아 등의 잡사를 돌본다. 사실 잡사라 함은 가정에 남아 있는 주부, 즉 아줌마의 입장에서 뱉어내는 자조적 단어다.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과 아이들의 밥상 차려주기, 옷이며 책가방 챙기기, 빨래를 끊임없이 반복해야하는 아줌마의 입장에서 보면 잡사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문명의 이기들이 가사노동의 강도를 줄였다지만 아내들의 손에는 하루도 물기 마를 날 없다.

문제는 바로 이처럼 주부인 아줌마들의 일이 소위 커리어 우먼들처럼 전문적인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잡사라는데 있다. 아줌마들은 주부의 일은 잡사인 반면 커리어 우먼은 선택 된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TV 등 매스미디어는 한 술 더 떠서 커리어 우먼은 화려하고 빛나게, 아줌마들은 초라하고 빛바랜 존재로 대비해 놓기 일쑤다. 그러니 우리 아줌마들의 상대적 좌절감과 비애감은 더욱 커져갈 수밖에.

그래서 얼마 전부터 여성관련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을 보면 이런 주부들의 불만과 한숨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문적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만 보면 주눅이 들고 자신이 인생의 패배자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남편도 상대적으로 화려한 그들을 좋아 한다’ 이같은 푸념이 급기야 ‘결국 나도 인생의 성취를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 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세간에 물의를 일으켰던 피라미드 판매사건 등은 주부들의 이러한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부산물이다.

그러나 이 땅의 아줌마들, 과연 그대들은 인생의 패배자인가. 아니다. 육아 등 가사 일은 아낙네의 일이라고 무책임하게 팽개쳐 버린 채 자신들만이 높은 세상의 이념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남성사회는 지금 스스로의 모순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수직과 폐쇄와 독점의 권력이 판치는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들 또한 대부분 패배자가 되어 만신창이가 된 몸을 그대들 앞에 누이고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다. 또 하나의 세상인 우리 아이들도 당신들이 지키고 키워왔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오늘의 이 세상은 육아 등의 일은 아내들에게 맡기고 거창한 구호나 외치고 다닌 남성들이 지킨 것이 아니라 아줌마인 그대들이 사랑과 희생으로 지키고 이어져오게 한 것이다. 결국 당신들이 부러워하는 ‘커리어 우먼’의 탄생도 아직은 이 지킴이 정신 앞에 남성사회가 미안한 마음으로 던져준 떡 몇 쪼가리에 불과하다.

허장성세의 가부장 권력은 이제 곧 종언을 구할 수밖에 없다. 그대들이 이어져 오게 하고 지켜낸 세상을 홀로 독점하기에 남성들도 많이 지쳐있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서도 그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곧 권력도 분점 될 것이고 일자리도 나누어 질 것이다.

‘나눔의 사회’가 실현돼야 가부장인 남성들도 편안해진다. 당신들이 지켜낸 소중한 가치의 힘을 통해 누구나 주부이고 커리어 우먼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다가올 것이다. 지금 아줌마들이 세상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이 아닐까.

/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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