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국민투표가 왜 겁납니까?-청와대편지

참 이상하네요. 수도 이전의 원안이 위헌으로 판가름 났습니다. 그럼 끝난게 아닌가요. 대선에서 행정수도 약속으로 아무리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고 해도 말입니다.

이를 행정도시로 바꾼 반쪽 이전의 후속대책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국사를 그렇게 처리할 수는 없지요. 물론 국가균형발전론을 또 들겠지만 생돈을 들여 행정수도를 만든다고 전국 방방곡곡이 고루 발전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논리의 비약이니까요. 되레 국력 낭비의 평지풍파로 축적된 국가경쟁력마저 저해될 요인이 다분합니다.

그러나 이런 논쟁은 그만 두겠습니다. 이미 이 단계가 지났다고 보니까요. 문제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수도 이전의 대전제가 무효화된 판에 분할 이전의 소전제가 어찌 유효화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원안이 부당 불법하여 헌법에 위배되면 변형은 더 부당 불법한 것 아닌가요.

역사 의식의 결핍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장차 한반도가 통일되면 그때 가서도 행정도시가 지금 대통령께서 주장하신대로 필요하다고 차마 말씀하실 줄은 없을 것으로 압니다. 나라의 미래사적 명운에 아무 쓸모없는 행정도시를 왜 난릴 쳐가며 억지로 만들어야 합니까.

난리를 치는 것은 국회가 만든 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친다고 말씀하시겠지만 아닙니다. 행정도시법 같은 건 국민적 공론 과정을 거쳐야 설득력을 지닌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인 사회 인식입니다. 정치적 의중이 투합하여 국회에서조차 제대로 된 토의없이 뚝딱 해치운 법이, 그것도 수도를 변칙으로 분할하는 야합이고 보면 어찌 거센 반발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책임은 원인을 제공하는 데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판단입니다.

그렇습니다. 포용과 신념은 중용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포용과 신념이 각을 형성할 땐 신념을 선택하는 것이 소신있는 자세일 것입니다. 고사를 보아 황희는 너그러우면서 강직하였고, 송시열은 강직하면서 너그러웠습니다. 한 분은 포용을 보이는 가운데 신념을 지켰고 또 한 분은 소신을 지키는 가운데 포용을 보였습니다. 공통되는 것은 두 분 다 소신을 굽히지 않기위해 목숨도 돌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왕조에서 임금의 세자 책봉에 감히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은 임금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런데도 두 분은 공교롭게 세자 책봉에 소신을 굽히지 않아 태종의 노여움을 산 황희는 유배되었고 숙종의 진노를 산 송시열은 사약을 받았잖습니까.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정부청사를 옮기는 과천에 그에 못지않은 연구단지 등을 들여 세운다니까 “연구단지가 그렇게 좋은 것 같으면 허허벌판인 연기·공주에 들일 일이지 멀쩡한 청사를 번거롭게 옮겨가며 왜 과천에 들이냐”고요.

그러나 일은 돌이킬 수 없게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와서 행정도시를 철회할 수 없는 것처럼, 이의 반대 또한 철회할 수 없게 된 게 현실입니다. 서로 포용될 수 없는 신념의 충돌을 대통령께선 어떻게 해결해야 된다고 보십니까. 행여라도 그냥 밀어 붙인다는 생각은, 측근의 그같은 건의가 있더라도 받아 들이지 않길 충심으로 바랍니다.

국민투표로 묻는 것이 대통령께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길입니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책무이기도 합니다. 포용될 수 없어 충돌하는 두 신념 중 하나를 이의가 없게 잠재울 방법은 국민투표밖에 없습니다. 북 핵 문제가 심상치 않습니다. 나라 안팎사정이 어렵습니다. 행정도시 파문을 시급히 국민투표로 국론을 통일하시기 바랍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국민투표 요구의 함성에 왜 귀를 막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국민에게 직접 묻는 것이 겁이 납니까. 행정도시란 게 그토록 좋다면 국민투표에 자신을 갖지못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지역 갈등을 조장한다는 구실일랑은 아예 말씀마십시오. 참으로 불행한 것이 지역 갈등이어서 시정돼야할 폐습이지만, 이런 가운데 각급 선거를 치러온 마당에 새삼 국민투표라고 못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국민투표도 시효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에 대한 위헌심판청구가 제기되어 위헌 결정이 또 나게되면 국민투표에 부칠 기회마저 잃게 되니까요.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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