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삶을 준비시키는 학교

얼마전 교장으로 있을 때 학부모 한 분이 학교에 찾아오셨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진로교육 덕분에 당신 아들이 조리고등학교를 선택해서 요리사의 꿈을 키우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는 것이었다. 여름 방학중에 내준 과제 중의 하나가 부모님의 직장을 방문하여 직업에 대해 여러가지 사항들을 알아오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상급학교나 직업현장을 방문하여 보고서를 내라는 것이었는데 그 학생은 아버님과 함께 모 조리고등학교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배우는 교육내용과 취업상황 등과 같은 진로정보를 얻고 “아, 바로 이거야”하면서 대단히 만족해하면서 진로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또 어떤 분은 자녀가 자꾸 직업세계에 대해 질문을 해 약간 귀찮다는 이야기도 하셨고 어떤 분은 자녀보다 알고 있는 직업의 수가 적어 직업알아맞추기 게임에서 졌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그리고 그런 변화들이 모두 학교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할 일, 갈 길에 대해 알아보고, 찾아보고, 고민하도록 독려했기 때문이라고 고마워하셨다.

사실 고마운 건 오히려 필자였다. 학생 스스로 자기 길을 찾고 준비하도록 돕는 교육을 하고 싶은 것이 필자의 교육적 소망이요, 보람이기 때문이다. 교육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마음의 준비, 능력의 준비를 시키는 게 아닌가. 스스로 살아야 한다는 것, 자기답게 사는 길이 어떤 것이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을 찾도록 돕는 게 아닌가. 비단 지금처럼 청년실업의 문제가 심각한 때가 아니더라도 성인이 되었을 때 자기 자신과 한 가정을 책임지고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준비하고 책임지도록 독려하는 것이 교육의 1차적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삶터. 그런 것들과 연계되지 않은 삶이란 얼마나 공허하고 장식적인가.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창의적 재량활동, 자치·적응활동, 계발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자기탐색과 진로탐색의 활동을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친구는 어떤 의미를 지닌 존재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고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직업정보를 구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등에 대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귀찮아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소극적이던 교사나 학생들이 차차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어서 그런대로 소기의 성과를 올려가고 있다.

그러나 직업관이나 직업위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좀처럼 깨뜨리기 어렵다는 것과 학생들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나 관심도가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변화하는 직업세계에 대해 필자 자신부터 너무 모르겠다는 점 등으로 인해 공연히 미안하고 자책감이 앞선다.

다행히 최근 진로 및 직업, 학과 선택과 관련된 정보가 풍부하게 나오고 있다. 워크넷에는 학과별 취업전망뿐 아니라 우리나라 1만여 개의 직업을 수록한 ‘한국직업사전’, 직업의 향후 전망을 담은 ‘한국직업전망’ 등의 자료를 볼 수 있고, 한국직업정보시스템(http:/know.work.go.kr)에서는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갖춰야 할 역량과 그 직업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또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출간한 ‘미래의 직업세계’도 학과별 진출 분야 및 직종을 자세히 담고 있고, 커리어넷에는 학생들을 위한 적성검사, 흥미검사, 가치관검사 등과 함께 수많은 직업정보들을 탑재하고 있어서 교사들과 함께 사이버상에서 직업심리검사도 해보고 정보도 찾아보고 한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여러분이 지금 좀 귀찮더라도 이러한 활동을 한 번 해 보면 몇 년후 자기의 진로를 탐색해야 할 때 지금 배운 방법들을 활용해 가치있고 유용한 정보를 찾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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