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여성 국회의원과 여성단체 지도자들이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불렀다. 이같은 신문 보도 사진을 보면서 난 자신에게 물었다. ‘도대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가를’.(그 여성들도 내로라하는 사람들이지만 나 역시 그들 못지않은 판단력을 지녔다고 믿기 때문이다) 보도 사진은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 통과와 관련한 2월28일자 어느 전국지 2면의 기사 내용에 실렸다.
호주제는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기각이(정족수에서 한 사람의 재판관이 모자란) 6 대 3으로 헌법 불합치판결이 나 2008년 1월까지의 한시적 폐지가 불가피하게 됐다. 헌재의 결정은 여성계 일각에서 양성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받아 들인 것이 대체적인 이유다.(결정은 당연히 기속력을 지니지만) 그렇다고 이해가 가지 않는 점에 이견 제시를 제한받을 이유 또한 없다. 이래서 한마디 하자면 호주제의 성 평등 위배 관점은 다분히 관념적이라는 것이다. 지구촌에서 결혼으로 여성의 성을 남성의 성으로 바꾸어 빼앗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밖에 없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성 평등은 있을 수가 없다. 성씨의 부계혈통 계승에(무슨 여성 해방운동이나 벌이는 것처럼) 이의를 달지만 일본이나 선진 서구사회의 여성들이 결혼으로 인해 자신의 본 성씨를 남편의 성씨로 바꾸는 것을 성 평등에 어긋난다며 이의를 달았단 말은 일찍이 듣도 보도 못했다.
(아내의 성씨를 빼앗지 않는)중국이나 북녘에서도 호주제를 폐지하긴 했다. 그러나 이는 여성 해방이 아닌 가정을 공산주의의 단위 세포로 조장하기 위한 정책 수단이었다. 일본도 2차대전 후 호주제를 폐지했으나 이 후유증으로 새로운 성씨가 수만개나 제멋대로 생겨 성씨 고유의 의미가 사라진지 오래다. 호주제를 일제 강점기에 제정된 ‘조선민사령’을 근거로 빗대어 힐난하는 ‘일제설’ 주장은 아주 잘못된 오류다. 조선조의 ‘경국대전’에 뿌리를 둔 전통적 가족제도가 곧 호주제의 기원이다.
호주제의 호주는 가족 중심의 구심적 상징일 뿐 무슨 절대적 권한을 가진 것도 아니다. (호주제가 싫어)앞으로 1인1적제 등을 강구한다지만 가족붕괴가 불가피하다. 형제자매나 조부모, 조손 간 혈통확인의 직접 문서가 끊긴다.
호주제가 지닌 불합리한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예컨대 미혼모의 경우다. 열심히 아기를 키운 미혼모가 뒤늦게 나타난 생부로 인해 아버지의 호적으로 아기를 빼앗기는 것은 실로 억울한 일이다. 이같은 폐습을 막기 위해 생부가 나타나도 미혼모의 자녀를 어머니 성씨로 하게하는 것은 법률의 보완만으로도 능히 가능하다. 굳이 호주제를 폐지하는 건 ‘교각살우’와 같다.
호주제 폐지에 따라 제발 앞으로 이런 일일랑 없으면 좋겠다는(몇가지) 우려를 갖는다. 여성이 시댁과 친정 양쪽으로 남성과 동등한 상속권을 주장하게 되는 것은 친정이 있을 수 없는 남성으로서는 불평등의 역차별이다. 결혼한 아내가 남편의 호적에 입적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족부(1인1적제)를 만들어선 진정한 법률혼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연금이나 보험 등 상속에 다툼이 심화할 수 있다. 자녀들 중 아버지와 어머니 성씨를 따로 받아 같은 한 부모의 형제자매가 성이 다를 수 있다.(이외에도 많지만 지면상 생략한다)
생각해보면 건강한 가정은 호주제가 폐지되든 말든 상관이 없다. 상관이 있는 것은 결손 가정이다. 재혼하는 개가 여성이 전 남편의 자녀 성씨를 새 남편의 성씨로 바꾸는 편의를 법률로 보장하는 것이 호주제 폐지다. 이런 상대적 소수의 결손 가정 여성을 위해 호주제를 폐지하는 게 옳다고 보기엔 심히 의문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성씨를 멋대로 바꿔 뒤죽박죽 됨으로써 족보가 별 의미가 없게 되는 점이다. 동물원의 동물에도 족보가 있고 진돗개 같은 개에도 혈통승계를 입증하는 족보가 있다. 하물며 사람이 성씨도, 본관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게 혈통승계가 불분명해지는 사실은 한국인으로서는 차마 설명하기가 어렵다.
단언한다. 남성도 어머니와 아내와 딸과 손녀는 여성이다. 여성 역시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과 손자는 남성이다. 자신이 남성이다, 여성이다 하는 사시의 눈으로 호주제를 보아서는 안 된다. 사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만세!’를 부른 그들은 도대체 어떤 여성들일까)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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