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정희 전대통령과 관련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법원의 일부삭제상영 판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법원은 영화 속에 삽입된 세 군데의 실제 다큐멘터리 장면을 삭제 후 상영하라는 결정을 하였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의해 영화 장면이 삭제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로 ‘표현 및 창작의 자유’ 침해에 대한 커다란 우려를 금치 못하게 한다.
이를 두고 영화계 뿐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며 새로운 형태의 검열이라고 반발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예술 작품은 예술가 특유의 상상력의 소산이다. 현실의 모든 주제는 예술가 고유의 상상력 안에서 해체되고 재해석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여러 예술적 언어로 재구성되는 것이 예술 작품이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특정 대목이 현실을 방불케 하니, 이를 도려내라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결정인 것이다. 역사적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특정 대목을 끼워 넣는 것은, 해체한 현실을 다시 구성해내려는, 특유의 예술가적 상상력의 산물인 까닭이다.
어떤 종류의 예술이건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그 작품이 독자나 관객에게 전달되기 전에 권력의 기준에 의해 사전 검열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따라서 법률의 잣대로 창작물을 재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1996년 공연윤리위원회가 영화상영에 앞서 그 내용을 심사하여 기준에 적합지 않은 영화를 상영 금지할 수 있도록 한 영화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던 것도 같은 취지다.
‘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 등 등장인물들에 대한 명예훼손 문제로 제작과정에서부터 논란을 빚었고, 완성된 후에도 작품성과 관련해서는 이런저런 논란이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해도 일반 상영도 되기 전에 법원의 판단, 그것도 가처분 결정에 의해 원작의 특정 부분이 삭제되는 것은 예술의 생명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제한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헌성의 소지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부분 삭제는 창작물 자체의 훼손을 의미하므로 창작물을 법원의 잣대로만 보아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제작자들 또한 창작·표현의 자유 만큼이나 중요한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정 병 국 국회의원(가평·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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