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다가옵니다. 이맘 때면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놋그릇을 닦는 것이 어머니께서 맨 먼저 서두르시는 설 치레였습니다.
밥그릇이며 찬그릇은 말할 것 없고 대야며 촛대며 아버지 재떨이에 이르기까지 놋쇠로 만든 유기류란 유기류는 다 닦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푸라기에 아궁이 재를 묻혀가며 그 많은 유기를 흡사 명경 알처럼 얼굴이 비치도록 닦으셨습니다. 막 닦은 놋그릇에 담은 그날밤 저녁밥 그릇엔 파르스름한 구리 성에가 끼던 게 생각납니다. 진종일 밖에서 자치기나 연놀이 같은 것으로 해를 보내다가 밥먹을 시각에야 집에 돌아온 저는 그 저녁밥이 그토록 맛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어머니의 증손주들은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만 노는 방안 퉁수가 됐습니다. 그러다가 피자나 치킨이란 것을 시켜 먹기도 하지요. 그래도 며느리나 그 녀석들이 귀여운 걸 보면 세상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인정은 그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별미를 만들면 이집 저집에 조금씩이라도 나눠먹는 배달 심부름을 하는 건 제몫이었습니다. 그 때마다 어머니 친구분들이 들려주는 칭찬이 듣기가 좋았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별미를 이웃과 나눠먹는 일도 드물지만 어쩌다가 들어오는 음식이 있더라도 잘 먹지 않습니다. 그냥 쓰레기 봉투에 담아 슬쩍 버리기가 일쑤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놋그릇 닦는 주분 아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놋그릇만도 아니지요. 명주옷을 빨래하고 손질하고 다리미질하는 일도, 이불 호청을 뜯어 빨아 풀먹이고 다시 꿰매는 일도 없습니다. 어머니를 도와 다리미질감 잡던 일이 생각납니다. 초저녁에 잠은 쏟아지는 데 물기 먹인 다리미질감은 딱 들러붙어 포개진 채 왜 그리도 좀처럼 줄지 않던 지 참 고역이었지요. 제가 그만 깜박 졸아 팽팽히 맞잡아야할 다리미질감이 갑자기 느슨해져 다리미 숯을 쏟기도 했지요. 때론 어머니가 졸아 제 손등을 다리미로 스쳐 데이면 황급히 간장을 발라주며 안쓰러워하기도 하셨습니다. 한번은 다리미질을 또 잡아야할 것 같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친구 집으로 뺑소니 쳤던 적이 있었지요. 이튿날 아침 조바심 내며 집에 들어간 저에게 미소만 지어보인 어머니께서 혼자 밤이 깊도록 다 다리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나무라기 보다는 혼자 다리느라고 볼품이 덜나게 다려진 것을 걱정하셨지요. 아버지는 그래도 사랑채에서 친구분들과 밤새워 바둑만 두셨지요. 제가 나이 들수록이 돌아가신 아버님이 더욱 존경스럽지만 여자를 낮춰보시던 생각이 어린 마음에도 달갑지 않았던 기억은 잊혀지 지 않군요.
설도 이젠 예전같지 않습니다. 동네 어른들을 다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리고 사돈네 팔촌까지 서로 찾곤했던 그런 설이 아닙니다. 바쁘기 때문이라고들 말합니다. 농사만을 짓던 예전에는 한 겨울이면 별로 하릴이 없어 설이면 서로 찾는 게 인륜사의 대사였지요.
굴뚝공장이 많아지면서 사람 살기가 달라지더니 이젠 꿈도 못꾸었던 컴퓨터 세상이 되면서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참 이상하대요. 문명이 발달하여 살기가 편해지면 시간이 남아돌 것 같은데 더 바쁘게 사는 것이 요즘 세상의 사람들입니다. 어머니의 증손주들 세상 땐 뭣이 나와 어떻게 달라질 지 또 모릅니다.
제가 철부지였을 적의 일로 떠오른 어머니 생각은 아주 아득한 옛날 이야기지만 저는 그런 어머니 모습을 그려보는 게 참 좋습니다. 그 무렵의 어머니들이 다 그랬었지요. 어머니 또한 한 집안의 며느리로 인종을 미덕으로 알고 무던히도 참으며 열심히 사셨습니다. 제가 거들어드릴 수 있는 일은 여름에는 돌확에 보리쌀 가는 일이고 설 땐 떡메 치는 일이 또 있었지요. 아버지는 사랑채에서만 줄곧 사시고 집안에 장정이 없다보니 힘이 부쳐 부대끼면서도 떡메를 칠 때는 그래도 신명났었지요. 이제는 시골에서도 떡메 치는 소릴 좀처럼 듣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어머니, 세상 살이는 달라져도 자식에 대한 어버이 정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지금의 어머니들도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똑같이 그렇게 키운 줄은 모르고, 제 자식들에게 자기만 그런 것처럼 온 정성을 다 하니까요. 저처럼 나이가 더 들면 나중엔 알겠지요. 어머님의 며느리가 설은 다가오는 데 몸이 몹시 안좋습니다. 이러다 보니 올해 따라 이 세상에 안계신 어머니가 더 생각납니다. 아버지도 그립습니다. 일흔살 먹은 아들이 아흔이 넘은 어머니 앞에서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피웠다지요. 저도 좀 어리광을 피우고 싶은 맘이 들어 어머니 생각을 해봤습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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