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미술관의 명암

언젠가 문화부장관이 우리나라에 천개의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다. 2004년말 기준으로 전국에 이미 360여개의 박물관이 세워져 있고, 경기도에도 70개소에 달하는 박물관, 미술관들이 들어서 있다.

우리의 경제규모나 지적수준에 비겨 볼 때 꿈같은 이야기지만, 최근의 추세로 보아 빨리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작년 10월 서울 한남동에 멋있는 미술관이 하나 새로 생겼다. ‘리움-삼성미술관’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 미술관은 고미술, 현대미술, 어린이미술관의 3자 복합체로 과거 용인에 세워졌던 호암미술관을 새롭게 확장하여 만든 것이다. 이 미술관은 유독 건축분야에 있어 국수적이고 후진을 면치 못하는 우리나라에 보기 드물게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쿨하스등 3명의 세계적인 건축가에게 세부분 각각의 특색을 살린 설계를 별도로 부탁하여 통합 구성한 아름다운 건물이다.

현대는 건축이 점점 대형화되고 예술품화 되어가는 추세에 있다. 그러한 경향속에 예술품처럼 만들어진 리움은 이름의 영문조합 ‘LEE-UM’이 말해주듯,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이건희 회장으로 이어 운영하는 미술관이라는 케치 프레이즈를 분명하게 앞세우고 있다.

지난 연말 강원도 양구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리움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아주 특별한 작은 미술관을 다녀왔다. 이 아담한 미술관은 ‘박수근미술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기념관 성격의 미술관으로 국내 건축가의 작품인데, 그 설립은 우리나라 근대의 대표화가 박수근의 유족과 애호가, 그리고 작은 지자체-양구군의 협력이 이루어낸 소중한 결실이다.

때묻지 않은 강원도의 그림같은 자연속에 불우했던 화가 박수근의 염원이 어린 터전을 끼고 다소곳하게 자리잡은 이 미술관은 건물 자체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은근하게 배어나고 있었다. 전시실 두개정도 규모의 그리 크지 않은 이 미술관에는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일컬어지는 박수근의 작품세계와 고난의 연속이었던 작가약력 등이 단촐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찾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미술관의 생명은 대개 건축보다는 소장품의 질로부터 나온다. 그런 면에서 리움-삼성미술관은 건물도 훌륭하지만 자타가 인정하는 미술품의 보물창고이다. 2대에 걸쳐 집중 수집된 삼성가의 수장품은 질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반면에 70년대 우리나라 미술품 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는 데에 일조를 한 박수근의 작품 성가에 비한다면, 유품수준의 스케치류 등과 손바닥 크기의 유화작품 세점만 달랑 걸려 있는 박수근미술관은 참으로 썰렁하다. 이는 우리의 미술애호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

한국에서 제일 비싼 그림으로 알려진 박수근의 그림들은 도대체 다 어디에 가 있단 말인가. 앞다투어 고가로 박수근의 유화작품을 모아 들인 수집가들은 왜 이 미술관에 좋은 그림 한점이라도 더 기증하려 하지 않는가. 이는 우리나라의 미술을 보는 시각이 아직도 부동산 투자의 연장인 재테크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음을 말해준다.

미술관이 잘 되기 위해서는 좋은 미술품의 입수 통로가 크게 열려 있어야 한다. 외국의 명문 미술관들의 유명대가 작품일수록 그 밑에는 아무아무개의 기증품이라는 명판이 돋보인다. 그에 비해 우리는 왜 기증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을까.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아직도 미술품을 투기재산으로 전유하려는 개인적인 치부욕과 미술품의 투자를 죄악시하거나 재산 빼돌리기 정도로 보아 기부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으려는 당국의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이래 가지고야 어느 천년에 좋은 미술관이 생기겠는가. 너무도 걱정스럽다.

/이 종 선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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