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개혁독재의 ‘함정’

중국의 자오쯔양(趙紫陽) 전 공산당 총서기의 죽음이 제갈량의 죽음을 연상케 한다. 촉한나라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가진 위나라와의 일전 중 병사하면서 자신의 시신을 수레에 앉힌 채 위나라 군영에 진군하도록 유언했다. 위나라 사마의는 죽었다는 제갈량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는 또 무슨 계략인가 싶어 도망쳤다.

자오쯔양의 사망이 소요사태를 유발할 것을 우려한 중국 당국은 외국 신문의 관련기사는 도려낸 채 배달하고 있는 게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의를 쫓아 냈다’는 고사를 방불케 한다.

자오쯔양이 두려운 것은 아직 살아있는 그의 합리주의 정신 때문이다. 제갈량 또한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유연한 전법을 구사했다. 감성적 비합리성과 우연을 배제, 도리와 이성적 논리의 지배를 추구하는 것이 합리주의다.

‘노사모’ 출신 등 친노세력 주축의 국민참여연대가 정치 세력화를 공식 선언한 것은 정치적 자유이긴 하다. 그러나 다분히 감성적인 것은 심히 우려스런 대목이다. 노무현 주군을 옹위하는 충성 맹서는 마치 3김 시대의 가신정치가 되살아난 것 같다. “대통령에게 욕을 하는 동창과 친구들에게 왜 대통령에게 님 자를 붙여야 하며, 왜 대통령이 위대한 지 그 이유를 설득해야 한다” “우리에게 누굴 지지할 것 이냐고 묻는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있을 뿐이다” “재야파나 다른 당내 커뮤니티들은 칼바람을 막아주는 노 대통령 덕분에 달릴 수 있는 무리 중 하나일 뿐이다” 이렇게 말 한 것으로 전해진 명계남 국참연 의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합리성을 일탈했다고 보아 이만 저만한 독선이 아니다.

국참연은 같은 개혁파인 유시민 중심의 참여정치연구회와도 선명성 경쟁을 내세워, 노 대통령의 적자임을 자임하며 참정연을 마치 서자 대하듯이 한다. 무엇보다 4·2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국참연이 당권 접수를 설정하고 나선 것은 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공식 입장이 평당원인 점에서 주목된다.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겸하지 않는 당정 분리에도 리모컨 정치로 능히 당을 더 효율적으로 장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강경 개혁파에 의한 이부영 전 의장의 낙마가 이같은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전당대회 대의원 1만5천명 중 5천명을 확보하겠다는 기염은 뒷배가 없인 나오기 어려운 소리다.

청와대는 국참연의 이런 움직임에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일 이라며 선을 긋고는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개혁에 변함없는 강한 사인을 이미 마운드에 보냈다. 지난 신년 기자회견을 가리켜 처음으로 험담없는 조용한 회견이라고들 말하는 것은 겉만 보아 하는 말이다. 개혁 법안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이의 반대를 가리켜 ‘기득권자’들이라며 목소리를 심히 높였다.

정치인 ‘노무현’은 변하지 않았다. 좀 달라진 것 처럼 보이는 것은 전술적 변화일 뿐 전략적 변화가 아니다. 이에 사이클이 일치되는 것이 국참연의 강경일변도다. ‘벙시레 웃음’은 정치인으로서 강점이다. 정몽준이 이 웃음에 녹아 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실패했다고 보는 관측이 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예의 ‘벙시레 웃음’을 만발해 보였으나 머릿속 컴퓨터는 치밀하게 돌아갔을 것으로 본다.

궁금한 것은 혁명에 비유하는 개혁의 종국적 실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전 이기명 후원회장은 “개혁은 혁명보다 힘들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라고 다짐했다. 국참연의 무서운 응집력은 세를 확산할 수도 있으나 와해도 어렵지 않다. 논리적 필연성으로 해명될 수 없는 감성의 모순에 부딪히면 오성의 눈이 트이기 때문이다. 모순을 발견하고도 치닫는 것은 오기다. 집권 여당이 이같은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는 것이 나라 안팎으로 중차대한 이 시기에 합당한 것인 지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제갈량의 팔진도법은 어디까지나 상대를 인정하며 공략하는 전법이다. 죽은 자오쯔양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부질없는 이념 논쟁의 시위는 자제할 것을 권고할 것이다. 상대는 모두 적이고, 협상은 굴복이고, 대화는 사치로 보는 일방주의가 세를 떨치고, 이 정권이 이에 자유로울 수 없게 되면 개혁독재다. 이 또한 청산돼야 할 민주화 대상이다. 과거 개발독재하의 민주화운동을 간판 삼는 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임양은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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