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
몹시 지쳐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지난 몇년 간 한 가지 일에만 매달려 정신 없는 시간을 보냈던 그에게 아마 시간이나 추억 따위가갖는 의미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머릿 속은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기엔 꽉 차있고 육신과 영혼 모두는 그로기 상태. 그에게는 쉼이 필요하다.
지난해 ‘거미숲’을 선보였던 송일곤 감독이 휴식 같은 영화 한 편을 들고 관객들을 만난다.
14일 개봉하는 ‘깃’은 스스로 ‘느닷없다’는 표현을 쓸 만큼 전작들과는 달라 보인다. 영화는 극적 굴곡이나 화려한 테크닉이 없는 잔잔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멜로물이다.
지난 몇년 간 ‘거미숲’에 매달렸던 감독 자신처럼 영화 속 주인공 현성(장현성)은 이제 막 영화 한편을 완성한 뒤 새 시나리오를 쓰던 중이었다. 일에 ‘진도’가 나가지 않자 그가 갑자기 찾기로 한 곳은 10년 전 사랑하던 여자와 함께 여행했던 우도. 두 사람은 그날 이후 정확히 10년 뒤 당시 묵었던 모텔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러고보니 내일이 딱 10년이 되는 그날이다. 느닷없이 찾아간 우도와 그날의 모텔. 기대 속에서 그곳을 찾은 현성을 소연(이소연)이 반겨준다. 소연은 숙모가 집을 나간 뒤 말을 잃어버린 삼촌과 함께 모텔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미뤄놓은 소연의 꿈은 탱고 댄서가 되는 것. 발랄한 소연의 친절 속에 현성은 10년 전의 그녀가 오기를 기다린다. 다음날, 모텔에는 현성의 이름으로 피아노 한 대가 배달되고 여자는 오지 않는다.
‘꽃섬’이나 ‘거미숲’을 보고 복잡한 상징이나 대단한 의미를 기대하고 극장에온 관객들은 김이 빠질지도 모르지만 ‘깃’은 다른 의미에서 송일곤 감독의 수작이라고 할만 하다.
영화는 멜로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인 설렘을 담고 있다. 자극적이거나 소란스럽지 않으면서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는 것은 영화가 휴식 혹은 쉼이라는 단어 자체와 닮아 있는 점. 우도에는 도시에는 없는 맑은 바람과 돌멩이가, 바다가 있으며 그래서 달콤한 휴식도 있다. 그 속에서 현성이 찾게 되는 것은 추억의 포근함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떨림이다. 설렘을 이끌어내는데 한몫 단단히 한 것은 ‘덜’ 알려진 배우들의 호연이다. 감독의 카메라는 장현성의 자연스러움과 이소연의 풋풋함을 꾸미지 않은 채 담아내고 있다. 상영시간 73분. 12세 관람가.
■몽정기 2
‘성숙한 남성이 수면중에 성적(性的) 흥분을 하는 꿈을 꾸고 사정(射精)하는 것’이라는 네이버 백과사전의 정의에서처럼 사실 몽정이란 단어는 남자들만의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14일 첫선을 보이는 영화 ‘몽정기2’에서는 선전 문구와 달리 사춘기 여자아이들의 성적 판타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성적인 흥분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은 당연한 얘기. 남자 중학생들 못지않게 여고생들의 성적 호기심도 왕성하다는 사실은 1편이 ‘히트’를 친 뒤 2편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됐겠지만 영화 속 여고생들은 성적 판타지의 주체가 아닌 대상에 머무르고 있다.
몽정이 남성들의 단어인 것처럼 이 영화의 주된 타깃도 아마 또래, 혹은 성인남자들인 듯하다. 여자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없으니 판타지라는 것도 이들을 위한다기 보다는 남자들 쪽으로 쏠려 있다.
그렇다면 남성들의 판타지는 충족이 됐을까? 에피소드는 전편의 복제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한 채 야한 화면도, 자극적인 대사도 없이 줄거리는 그저 밋밋하게 흘러간다.
과장된 캐릭터나 흔한 결말, 과장된 성 판타지 같은 단점이 더 쉽게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섹스 코미디이긴 하지만 오히려 웃음이 터져나오는 지점은 이지훈이 연기하는 교생 선생과 관련된 배설물 코미디에서다.
배경은 1편 이후 3년이 지난 1991년. 주인공들이 고등학교 2학년 생이니 전편의 남자 중학생들과 같은 또래다. 등장 인물은 아직 초경도 못해본 ‘숙맥’ 성은(강은비). 터프한 성격의 수연(전혜빈)과 내숭 덩어리 미숙(박슬기)은 성은의 단짝 친구며 마찬가지로 호기심이 넘치는 여고생들이다.
이들 앞에 나타난 성(性)적 판타지의 대상이며 운명의 상대는 체육 교생 선생님 봉구(이지훈). 같은 반 친구며 성적으로 유난히 성숙한 세미(신주아)는 ‘봉구씨’를 사이에 두고 경쟁을 벌이는 여고생들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다.
가수 뺨칠 정도의 노래 실력에 잘생긴 외모, 학생들을 설레게 하는 느끼한 말투까지. 이 ‘킹카’ 교생 봉구에게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성적으로 흥분을 할 때마다 엉덩이에서 ‘가스’를 뿜어댄다는 것. 의외로 성숙한 여자아이들 앞에서 봉구는 계속 ‘실례’를 저지르고 여고생들의 노골적인 공세는 계속된다.
그러던 어느날, 세미에게 점점 밀리고 있다고 판단한 성은은 결국 봉구의 집에 쳐들어가기로 결심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01분.
■샤크
누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했던가. 소박해야할 작은 물고기는 일확천금을 꿈꾸고 사람 한명쯤 뚝딱해야 할 상어가 채식주의자에다가 고요해야 할 바닷속은 뉴욕 한복판과 다름없다.
7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샤크’는 ‘슈렉’의 드림웍스 군단이 만들었다는 것 만으로도 기대가 큰 작품이다.
바닷속 고래 세차장에서 일하며 하늘에서 돈다발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작은물고기 오스카(윌 스미스). 오스카는 우연히 상어 한마리와 마주치고 그 순간 어이없게도 하늘(?)에서 닻이 떨어져 상어가 즉사한다.
졸지에 상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영웅’이 된 오스카는 모든 물고기들의 주목을 받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러던 중 상어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출한 채식주의자 상어 레니(잭 블랙)를 만난 오스카는 자신이 죽인 것으로 돼 있는 상어가 상어조직의 대부 돈 리노(로버트 드 니로)의 큰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두려움에 떠는 오스카는 집에 가기 싫은 레니와 ‘윈-윈 전략’으로 거짓말을 꾸민다. 애니메이션 기법은 경쟁작인 ‘인크레더블’과 ‘폴라 익스프레스’에 비견될 만하다.
바닷속을 부드럽게 헤엄치는 물고기와 반짝거리는 지느러미, 물고기가 지을 수있는 최선의 표정, 뭔가를 한꺼풀 벗겨낸 것처럼 깨끗하고 선명한 화면 등 눈을 즐겁게 해주는 볼거리는 충분하다.
이 영화의 키워드는 ‘패러디’. ‘총알탄 사나이’가 개척하고 ‘슈렉’이 한단계 끌어올린 패러디의 끝을 달리며 온갖 패러디를 종합선물세트로 보여준다. 끔찍한 교통체증과 지저분한 뒷골목, 눈부신 펜트하우스 등 초밥장사가 안된다는 것만 빼고 인간사회와 똑같은 바닷속 도시. GUP, 피쉬킹, 코랄콜라 등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브랜드와 ‘대부’와 ‘타이타닉’, ‘죠스’ 등을 패러디한 장면도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까지 그대로 빼다 박은 인물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오스카는 생김새부터 손짓, 발짓까지 모두 실제 윌 스미스 그대로이고 로버트 드 니로가 맡은 돈 리노는 얼굴 오른쪽의 점까지 똑같다.
르네 젤위거 특유의 표정과 안젤리나 졸리의 도발적인 입술도 마찬가지.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영화는 점점 삼천포로 빠진다. ‘진짜 윌스미스와 똑같다’정도 말고는 별다른 웃음거리를 주지 못한다.
배우들도 물고기로 변했다뿐이지 새로운 인물을 연기하지 않고 평소의 이미지에 업혀갈 뿐이다. 누가 영화 속에서 윌 스미스가 ‘윌 스미스’역을 하기 바라겠는가. ‘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이 맡은 상어 레니가 가장 신선한 캐릭터. 겉모습은 상어지만 속은 새우인 레니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처럼귀엽다. 목소리 연기도 잭 블랙이 가장 돋보인다.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홍콩 영화 ‘도색’이 다음달 독일에서 열리는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됐다. ‘도색’은 3명의 트랜스젠더가 만들어가는 사랑을 다룬 영화로
하리수는 홍콩의 청슈와이와 일본의 게이코 마쯔자카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유원경몽’등을 만든 연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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