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변화에 몇가지 전망이 가능하다. 우선 평양정권의 몰락을 들 수 있다. 평양정권의 몰락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몰락을 꼭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김정일 정권의 대체 정권이 들어설 수 있다. 이의 배후엔 중국의 강력한 후견인 역할이 작용할 것이다. 시기는 김정일 정권 체제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손익계산 시점을 언제로 보느냐는 중국 지도부의 선택에 달렸다.
부시 미국 행정부의 대북 기본방침은 여전히 ‘악의 축’을 없애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부도덕한 김정일 정권 같은 정권은 무력을 행사해서라도 추방해야 한다는 부시의 당초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북핵문제는 그 한계선이고 6자 회담은 구실과 시간 벌기다. 북의 핵무기 완전포기선언이 나오지 않는 한 종국엔 경과조치로 내세우고 있는 평화적 해결의 ‘비둘기 카드’를 버릴 것이다. 이 경우 북녘 동포의 희생이 불가피하여 동의하기가 심히 어렵다. 또 미국의 대북 무력행사는 조·중방위조약에 의한 중국과의 충돌을 유발할 수 있어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조·러안보조약 또한 뇌관이다.
가장 바람직한 북녘은 통일에 앞서 그들이 잘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전제된다. 먼저 대량살상 무기 개발을 생존 수단화한 군비확장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개혁 개방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나 미사일, 화학전, 핵 무기 등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을 포기할 징후는 아직 없다. 다만 ‘우리식 사회주의’로 불리는 제한적 개혁을 옆길 게걸음으로 가고 있을 뿐이다. 협동농장의 공동작업을 2~3가구로 세분하는 분조화 농업개혁은 단위 생산량 증가를 위한 새로운 개혁 사례로 꼽힌다. 이는 1978년 중국의 사회주의 농업개혁의 초기단계와 같은 것으로 사실상의 가족영농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농사를 잘 짓는 데 모든 역량을 총집중 총동원해야 한다’는 신년사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는 5월에는 구미 등지의 300여 기업체 유치를 목표로 하는 초대형 무역박람회를 연다. 합작투자를 모색하는 이의 제한적 개방 성격을 가리켜 북측은 ‘경제조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불가피한 개혁 개방을 이처럼 제한적으로 고민스럽게 해서는 성공하기가 어렵다.
중국의 성공한 개혁 개방에 비하면 북녘은 토양적 조건이 다르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 이후 사회체제 전환이 정치적 전략과 일치하였다. 그러나 북녘은 지금도 김일성주의의 유일 주체사상을 고수하고 있다. 주체사상이 폐쇄사회의 응집력에는 크게 기여했으나 개혁 개방에는 거추장스런 모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여기에 북녘 동포의 중국 왕래, 남한에서 U턴한 탈북자 등의 틈새 바람은 차돌 같았던 경직사회에 균열을 일으켜 푸석돌이 되어간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들 김정철의 권력승계가 3대로 이어질 공산은 매우 낮다. 후계자 문제 등을 둘러싼 평양정권 내부의 심상치 않은 정황이 여러 갈래로 관측된다.
2002년 7·1조치로 개인의 영리활동이 인정돼 시장이 형성되면서 나타난 빈부현상은 큰 사회적 혼란이 내제되고 있는 데도 통제되지 못 하고 있다. 한류바람도 세차다. 남쪽 드라마나 영화 테이프만도 100여 가지가 지하로 유통되면서 탤런트 송혜교가 젊은층의 스타로 뜨고 있다. 공안 당국은 가두 방송 등을 해가며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한류풍은 여전히 드세다. 남조선 머리모양, 남조선 옷가지며 화장품 등은 더 할 수 없는 인기 품목이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에 종말을 가져오게 한 단초가 미국의 청바지문화 유입이다. 북녘 인민은 자유의 맛, 부르주아의 맛을 보기 시작한 가운데 폐쇄사회의 통제력은 점점 잃어가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붕괴되지 않는 길은 중국처럼 정치적 체제개혁을 수반하는 완전한 개혁 개방으로 나오는 것 뿐이다. 더는 합리화 시킬 수 없는 낡은 유물의 주체사상을 내 치야 하는데도 제 발목에 걸려 못 하고 있다.
그러나 정권의 취약성과 군사적 위험성은 별개다. 저들은 세계에서 톱텐 안에 드는 군사강국이다. 신년사에서도 ‘선군의 위력을 더 높이 떨치자’고 했다. 정 안 되어 이래도 저래도 망할 판이면 일전불사의 전쟁 도발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선군사상이다. 지도층은 도박을 건 승부에 패해 중국이나 러시아로 망명하면 그만이지만 한반도의 남북 동포는 피투성이가 된다. 이같은 불행을 막기 위해 세계사상 유례가 없는 평양정권을 상대하자니 무척 힘이 든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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