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해 달력을 받았는데 겉장을 보니 커다란 수탉이 그려있었다.
“어, 내년이, 그러니까 며칠만 더 있으면 닭띠 해가 오는구나” 하며 새삼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 별로 되어있는 탁상달력을 한 장씩 넘겨보았더니 날짜마다 몇 시에 무슨 회의, 만난 사람들, 학회기간의 화살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으나 정작 내가 지난 한 해 동안 이룬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며칠 후에는 태어나서 네 번째로 닭띠 해를 맞을 것이며, 그 다음에 맞을 닭띠 해는 회갑이 된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마라톤에서 반환점은 이미 돌고도 한참이 지난 지점에 와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고 내가 어디 쯤 있을 지는 생각하지도 못하였던 것 같다. 고은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올 때 못 본 그 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보며 지나온 길 보다 짧은 갈 길을 옷깃 여며 살피며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1957년에 태어난 정유(丁酉)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보다 한 살 먼저 태어난 이들이다. 우리 바로 윗 학년부터 중학교는 무시험 추첨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고등학교를 시험치르고 들어간 세대이다.
나는 69년에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81년에는 의과대학을 다니고 있었으며, 93년에는 조교수 발령을 받았다. 이 57년 닭띠들이 이제 사오정을 지나 오십을 한걸음 남겨놓고 있다.
닭의 해를 맞아 닭의 특징에 대하여 안동의 향토 서예가 권영한 선생에게서 들은 대로 적어본다. “닭은 수선스러운 동물이다. 여기저기 떠들고 돌아다녀 안정감이 없다. 그런데도 혼례 때는 살아있는 닭을 보자기에 싸서 꼭 혼례상에 놓는다.
그 이유는 닭이 가지고 있는 ‘나눔의 정신’ 때문이다. 닭은 모이를 발견하면 절대로 혼자 먹지 않는다. 꼭 권속을 불러 같이 나누어 먹는다.” 닭띠라서 그런지 나도 가솔을 이끌고 적은 모이일망정 나누면서 여태껏 지내왔으며 어리에는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닭처럼 이웃, 가족과 기쁨뿐 아니라 어려움도 함께 나누는 ‘나눔의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황건 인하대병원 교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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