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저희나라’ 유감

존댓말을 잘못 사용하면 안함만 못하다. 무심결에 ‘우리나라’를 ‘저희나라’라고 하는 이가 많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유식한 체한다. ‘저희나라’라면 우리가 외국사람에게 ‘우리나라’를 낮추어 말할 때 써야 할 표현법이다. 그런데 우리끼리 ‘저희나라’라고 낮추어 말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하대형 존댓말을 이렇게 잘못 사용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또 수월치 않게 듣는 표현중에 이중존칭이 있다. 요즘 자주 듣는 ‘연말연초에 일하시느라 바쁘신데도 불구하시고’ 운운의 이중 삼중 존칭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의원님의 사모님’이라든지 ‘회장님 사모님’등의 표현은 듣기에는 대단히 정중한 표현같지만, 말하는 사람의 얄팍한 교양이나 무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촌스런 화법이다. ‘업무처리에 바쁘신데도 불구하고’나 ‘회장 부인 혹은 사모님’으로 충분한데도 무엇이 그렇게 존경스럽고 송구스러운지 존칭을 두 번 세 번 거푸 반복한다. 존칭의 바겐세일이다.

적절한 존칭어 사용은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나 교양을 한결 돋보이게 하기도 하지만, 그 사회의 도덕성이나 사회규율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려주는 건강한 청신호이다. 반면 부적절한 존칭의 사용 내지 예법에 맞지 않는 존댓말의 사용은 말하는 사람의 천박함이나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그 사회가 어딘가 어둡고 건전하지 못하여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리는 위험한 적신호이다.

언어학자들이 공감하듯이, 우리말 우리글은 전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세련되고 아름다운 말이요 글이다. 우리말이 갖는 언어학적인 탁월성은 표현에 있어서 ‘새콤달콤한’같은 수식어로부터 ‘젓수셨다’등의 극존칭어에 이르기까지 개별 언어가 갖는 다양하고도 풍부한 표현에 그 튼실한 바탕을 두고 있다.

요즘은 우리말 우리글이 너무 혹사당하는 시대이다. 그 이면에는 산업화와 속도화의 폐단때문에 살벌해진 사회현실과 얄팍한 문화생활이 있다.

그런 속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표현이나 표피만을 자극하는 언사가 판을 치다 보니 우리말이 갖는 오묘한 아름다움이 크게 손상되어가고 있다. 그런 판을 더욱 악화시키는 데에 속성 언론이 일조를 하고 있어 유감이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고양시키는데에 공교육이 앞장서야 한다.

탁한 것이 있어야 맑은 것이 돋보이고 추한 것이 있기에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듯이, 아름다운 것을 제대로 가려내려는 노력이 부족하고 탁한 것을 걸러내려는 시도가 없으면 우리말과 우리글은 언젠가는 지저분한 쓰레기더미같은 모습으로 전락하고 말리라.

‘방가방가, ㅋㅋㅋ’등의 표현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는 인터넷 대화문자이다.

특히 핸드폰 문자메시지에 많이 쓰이는 이런 표현을 접하다 보면, 언어를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통속성에 거부감이 앞서고 일상어마저 유희도구화 하려는 현대인들의 속물적 근성에 치를 떨게 된다.

어느 집단에나 은어나 속어가 있게 마련이고 그런 것들은 어찌 보면 당대 문화의 다른 얼굴이거나 집단스트레스 해소창구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현대는 속도의 시대이고 따라서 많은 생략과 간편화는 불가피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류의 편리함이 우리의 미풍양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을 흠집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면 이를 무작정 방관할 수는 없다. 우리처럼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고 논리적이기보다 감정에 치우치는 심성의 민족에게는 그런 면에서 각별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닭띠 새해에는 아름다운 우리말의 세련된 표현을 기대한다.

/이 종 선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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