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수능시험 필요한가

“대학을 웃고 들어가서 울고 나오도록 하겠다”고 했다. DJ 말이다. 1997년 12월18일, 제15대 대통령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그랬다. 평택문예회관인가에서 가진 ‘평택시민과의 대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두가지를 약속했다. 그린벨트 완화와 대학입시 개선이다. 영국서 그린벨트가 중요시된 게 국토에 평야가 많은 것과는 달리 한국에는 산이 많으므로 그린벨트의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나서 그린벨트를 대폭 해제하여 후대 자원으로 수십년 지켜온 개발제한지역을 당대에 형해화해 버렸다.

그러나 대학졸업의 국가시험제 공약은 끝내 불발됐다. 대학 수능시험을 폐지, 입시를 대학 자율에 맡기는 대신 졸업자격을 국가시험제로 하여 대학가에 면학풍토를 조성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시민과의 대화 현장에서 이 말을 들으면서 마땅치 않게 여긴 그린벨트 완화는 이루어지고, 전부터 여겨온 평소의 생각과 신통하게 일치했던 대학졸업 국가시험제는 말도 끄집어내지 못한 채 그는 임기를 마쳤다.

남녘 광주발 수능시험 부정 사건이 16개 시·도의 전국적 범죄로 번지면서 한국 교육이 휘청거린다. 휴대전화 커닝, 대리시험 등은 이미 고질화된 구조적 비리로 밝혀졌다. 수백명이 형사문제화하거나 무효처리되고도 수능시험은 여전히 강진의 진앙 속에 묻혀 있다. 경찰은 2만건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분석하는 가운데 1천600여명의 의심자를 밝혀냈다. 총체적 결함을 지닌 수능시험은 권위와 신뢰를 잃어 얼마나 승복력을 가질 것인 지 심히 의심된다.

문제는 앞으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나선다지만 도시 미덥지 않다. 크게는 열다섯번, 작게는 스무번도 넘게 고친 정부 관리의 대학입시제 자체도 아직 문제점 투성이다. 여기에 커닝과 대리시험으로 치명상을 입고 있는 내우외환의 수능시험을 더 고집하는 게 과연 옳은가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

개혁피로의 증후군이 쏟아질 정도로 개혁을 입버릇 삼는 이 정권이 유독 대학입시제만은 개혁을 말하지 않는 데는 큰 착각에 기인한다. 평등과 능력을 혼돈하고 있다. 평등은 인권차원의 인식이며 능력은 인격차원의 관념이다.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지만 인격은 천차만별이다. 천차만별의 인격적 가변능력을 불변가치인 인권적 평등의 잣대로 묶는 것이야 말로 실로 잔학스런 불평등이다.

학력(學歷)은 높으면서 학력(學力)은 낮은 오늘날의 하향 평준화의 개탄이 이에 연유한다. 국내사회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경쟁이 날로 심화하는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 경쟁을 경험할 학생에 대한 학교 교육이 무경쟁을 지표로 삼는 게 학생을 위한다 할 순 없다.

공부않고는 실력자가 있을 수 없고 실력없인 인재 또한 있을 수 없다. 지식산업의 경쟁력 확보는 인재 배양이 관건이다. 인재가 국가사회를 먹여 살리는 시대상은 앞으로 더욱 가열될 것이므로 지식산업의 경쟁력은 생명이다.

물론 전인교육엔 지적교육을 겸하는 인성교육이 중요하다. 그러나 인성교육은 윤리교과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성교육은 교사의 품성이 곧 또하나의 교과서다.

존경받는 교사가 많으면 그것이 바로 학생의 인성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존경받지 못한 교사가 많으면 학생의 인성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예컨대 툭하면 교단을 등지고 길거리로 나서기가 일쑤인 교사들로부터 학생들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 지 매우 궁금하다.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기초가 된 루소의 자연주의는 인간의 능력에 의한 기회 균등이 본질이다. 맹목적 평등으로 개성을 유린하는 것을 거부한다. 페스탈로치의 인간학교는 능력의 자발적 활동을 통한 조화를 강조한다. 듀이는 지식교육 속의 인성교육, 인성교육 속에 지식교육이 있음을 설파했다.

해마다 수능시험을 치르는 난리를 벌이면서도 연례행사가 되는 말썽은 정부가 수능시험을 포기하지 않는한 계속될 것이다. 사교육비 문제는 어차피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는 터에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다. 정부가 대학이 못미더워 시험을 치를 요량이면 입학보다 졸업자격을 관장하는 것이 국가사회를 위해 더 유익하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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