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날’의 제정이 그 분의 덕인 줄을 처음 알았다. 얼마전 서울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추계 최은희 문화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추계 최은희여사 탄생 백주년기념 학술회의’ 자리에서였다.
학술회의는 김후란 선생(자연을 사랑하는 문화의집 서울 이사장)의 ‘추계 최은희여사의 회고’에 이어 노영희 동덕여대 교수의 ‘추계 최은희 선생의 삶과 사상’, 이배용 이화여대 교수의 ‘여성 지위 향상의 길을 닦은 최은희’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됐다. 토론에는 신경숙 한성대 교수와 박무영 연세대 교수가 참여했다. 추계의 아들되는 이달순 수원대 명예교수의 폐회인사로 학술회의는 성황리에 마쳤다.
필자는 고명한 교수진의 학술발표에 의해 조명된 추계를 거듭 언급하는 것도 송구스럽고, 또 학술발표 내용은 이미 경기일보 11월25일자 20면에 ‘최은희 불꽃같은 생을 살다’라는 제목으로 특집 보도된 바가 있으므로 중복을 피하겠다. 다만 이 나이 들어 새삼 수업받는 경건한 마음이 드는 가운데 들은 나의 판단으로는 추계야말로 인본주의의 실천자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기자로만 여겼던 선입관에 비하면 이는 실로 나에겐 놀라운 발견인 것이다.
오늘날 5월8일을 어버이날로 1974년 부터 정해 온 연유가 ‘어머니날’이 모태인 것은 알았으나, 그 ‘어머니날’이 추계가 대한부인회 부회장으로 활약하던 1952년 부터 추진, 마침내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로 채택된 사실은 그날 처음 비로소 알았다. ‘어머니는 위인을 낳는다’ ‘어머니는 한 집의 거울이다’ ‘어머니는 평화의 주인공이다’라는 케치프레이즈로 당시 한국전쟁으로 인한 폐허속에 아들 딸을 잃은 어머니들에 대해 위문의 사회바람을 불러 일으킨 것 또한 인본주의 정신인 것이다.
지금의 경기여고 재학시절인 열여섯 나이에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해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1924년 춘원 이광수의 권유로 일본 유학 도중에 조선일보에 들어가 최초의 여기자로 8년동안 활약하면서 핍박받는 여권과 빈민층의 심층보도를 위해 잠입취재 등 남자들 보다 더한 의욕을 보인 것 역시 남달리 지닌 인본주의의 발현이다. 1925년 을축년 대흉년 때 구호에 앞장서 보인 사회봉사의 맹활약 또한 인본주의다. 결혼한지 12년만에 남편을 사별한 불행을 겪고도 3남매를 반듯하게 키워 모두 박사학위를 지닌 학자로 배출한 것도 인본주의의 의지다.
말년에 무려 6천여 장의 원고지를 집필, 불후의 근대사 자료로 평가되는 ‘한국근대여성사’를 내고 또 당시로는 거금인 5천만원을 후배를 위한 기금으로 기탁하여 해마다 ‘최은희여기자상’ 시상이 있게 한 것도 인본주의 정신으로 보아진다. 1904년에 태어나 1984년 연치 여든을 일기로 타계하신 추계 최은희 선생은 불꽃처럼 왕성한 외부활동을 보였으면서도 집안에서는 이부자리를 빨면서 빼낸 실을 모아 다시 쓰곤 했을 만큼 검소하게 지낸 분이다.
추계는 개화기를 개척한 신여성이지만 그가 실천해 보인 인본주의 모럴은 21세기 이 시대에도 일깨우는 의미가 많다. 가정과 사회활동 양면의 성공을 훌륭히 병립해 보인 추계의 정신이 인본주의가 바탕이었다면 그는 지금도 우리의 여성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항일운동, 언론인, 여성운동과 함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보여준 그 분의 인본주의 의지는 작금에 인본주의가 점점 퇴색해 가는 것이 안타까워 더욱 더 돋보인다. 내년 ‘어버이날’에는 이 날이 있도록 ‘어머니날’을 제정케 해준 추계 최은희 선생에 대한 흠모의 정으로 한층 더 뜻 있을 것 같다.
/이지현 (사)한길봉사회경기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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