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오늘 청와대서 갖는 각 정당 대표 및 3부 요인 초청 남미 순방외교 설명회는 솔직히 터놓고 얘기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특히 ‘북 핵무기 주장에 일리 있다’는 로스앤젤레스 연설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산티아고에서 가진 한·미 두 나라 정상회담의 배경 설명은 더욱 그러해야 한다. 이에 대한 설명이 귀국길에 있었던 호놀룰루 동포 간담회에서 없지 않았으나 그같은 원론적 얘기를 듣자는 게 아니다. 또 노·부시 회담에서 대통령의 로스앤젤레스 발언이 쟁점화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그래서 대통령이 외교안보팀에 한턱 내겠다는 그런 자화자찬의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다.
한·미 간에 이견이 정말 없는가, 한국의 주도적 역할의 실체가 무엇인가, 로스앤젤레스 연설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포석인가 뭔가를 밝혀 국민적 이해를 구하는 진솔한 자리가 돼야 한다. 왜냐하면 ‘한·미관계에 큰 걱정이 없다’는 말이 이 정권들어 잦은 것은 바로 이상 징후가 있다는 반어이기 때문이다. 한·미관계의 겉과 속이 달라 혼란스럽다는 것은 최근 미국의 전략문제 전문가들 역시 시인한 일이다. 그들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은 노무현 정부의 언행이 다르다며 한마디로 불신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연설 역시 그들은 평가절하 한다. 연설 내용은 부시에 대한 촉구인 데도 그렇게 받아 들이지 않았다. 주한 미국의 한 고위 인사는 “흥분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의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의견을 내겠다”는 미 국무성의 시큰둥한 반응이 나온 것은 그 이튿날이다. 같은 날 “북한이 외화를 얻기 위해 무기급 플루토늄을 테러 집단에 팔 수도 있으며 이는 전 세계적 재앙”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한 것은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이다.
부시의 공식 외교채널이 이처럼 노 대통령의 연설을 외면한 가운데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란 것을 묵인한 건 일종의 암수다. 그렇다면 한번 해보라는 의미다. ‘동의한다’는 것은 북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시도를 말하는 것이지 ‘북의 핵 보유에 일리가 있다’는 말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한·미관계의 미봉책이 유효기간을 오래 갖는 것은 아니다. 부시의 숨고르기가 끝날 때까지 북을 설득하는 노 대통령의 주도적 역할이 미흡하게 되면 부시는 드디어 북을 제재하는 압박수단의 구실로 삼을 공산이 높다.
미국에 할 말을 하는 대미외교가 정작 부시를 만난 자리에선 말을 안하는 게 할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승만은 트루먼에게 대놓고 한국전쟁의 책임을 따졌고, 박정희는 카터에게 할 말을 제대로 해서 남한내 미군철수의 대선 공약을 백지화 시켰다. 이 정권은 뭐가 좌파냐고 말하지만 미국의 시각은 좌파로 보고 있다.
한·미 동맹이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이래서 난다. 한·미 관계에 또 하나 걱정되는 것은 미군 용산기지 평택 이전이다.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인 지 의심스럽다. 정부가 성의를 다 한다고 보기 어려운 징후가 여기 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연유의 의도가 무엇인 지를 판단하기가 심히 두렵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배알이 없어 미국 대선에 부시를 지지하고 나선 건 아니다.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다. 반미나 친미 따위의 공허한 개념을 떠난 용미의 실리주의인 것이다. 우리라고 배알이 뒤틀린 일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반미나 친미정서로 결부시키는 것은 무위하다. 한·미 동맹은 반미의 좌파 이념이나 친미의 맹종이 아닌 용미차원의 국익을 위해 추구돼야 한다.
주한 미국의 그 고위 인사는 한·미 관계의 전환기에 수평적 정립을 위한 상호노력을 강조한 끝에 이런 말을 했다. “한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미국은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한·미 관계가 정상이라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미국이 속 쓰려도 한반도를 쉽사리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로스앤젤레스 발언이 있은 후였다. 부끄럽지만 안보나 경제 등의 대미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게 현실이다. 자동차 대미 수출만 압박받아도 수만·수십만명의 실업자가 쏟아진다. 허장성세나 공연한 배알에 치우치기 보다는 시급히 국력을 키워야 한다. 대통령의 대미관은 이러지 않는 것 같아 불안하다.
/임양은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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