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우만동 월드컵수원경기장 앞 도로를 조금 지나면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함께 나란히 위치한 지상 9층과 지상 8층의 쌍둥이 빌딩이 보인다.
이곳은 국내 최초 고층 교정시설인 수원구치소이지만 민원인에게 전혀 위화감을 주지 않는다 지난 96년 수원교도소 구외공장 부지에 개청한 수원구치소(소장 이태희)는 올들어 ‘시민과 함께 하는 열린 교정’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과 함께 하는 구치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민원실에 마련된 열린 화랑.
혐오시설이라는 이미지를 쇄신하고 시민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 5일 민원인실 50여평의 공간에 화랑을 개관했다.
수원지역에서 활동중인 화가 6명의 작품 20여점을 전시한 화랑은 이미 민원인들의 안락한 휴식처로 자리잡았다.
수감중인 가족이나 친구를 면회하기 위해 찾아온 민원인 대부분 어두운 얼굴로 구치소에 들어서지만 민원실에서 대기하는 30~40분동안 화가들의 작품을 보며 마음을 달래주고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게 됐다.
또 외국인 수용자가 증가함에 따라 외국인 민원인의 편의를 위해 지난 4월 민원실 안내표지에 영어, 중국어 등을 함께 표기하고 외국인 수용자의 영치금·품 대장도 외국어로 제작하는 등 교정의 국제화에도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삼성의료원, 국세청 민원실 등에서나 볼 수 있었던 최첨단 민원인접견안내전광판이 오는 12월에 교정시설 최초로 선을 보인다.
현재는 면회를 온 민원인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지만 친절한 안내방송 및 대기시간 등을 미리 알 수 있게 됐다.
더욱이 구치소는 지난 4월 청사 앞 진입로를 확대하고 겨울철 미끄럼방지를 위해 경사로에 열선을 설치하는 등 입구에서부터 확 달라졌다.
이밖에 구치소는 오후 6시부터 민원인주차장을 개방하고 테니스 2개면도 시민들에게 개방, 주민들의 체력단련시설로 제공하고 있으며 경비교도대는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안전하게 등교할 수 있도록 교통지도를 해주는가하면 매주 3회 수원시 우만사회복지회관에서 불우가정 학생 및 지역주민들에게 영어, 수학 등을 가르치는 등 지역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수용자 인권 및 처우 개선
지난 2월 부임한 이태희 소장은 시설을 둘러보던 중 수용자들이 직원들의 구두를 닦아주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 소장은 수감자들이 직원의 구두까지 닦는 일은 일제의 잔재로 사라져야 한다고 느끼고 바로 구두닦이 기계를 구입해 비치하면서 수용자대신 100원짜리 동전 하나로 직원들의 구두닦는 것을 해결했다.
특히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지난 5월부터 독서지도와 한자교육을 적극 권장하면서 매달 100여명의 수용자가 독후감을 제출하고 있을 정도로 독서 열기가 높다.
이 결과 지난 10월22일 새마을문고중앙회가 주최한 제24회 수원시민 독서경진대에서 독후감부문 일반부 개인부문 최우수 및 우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고 지난 19일 새마을문고 경기도지부 대회에서는 독후감부문 단체 일반부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는 결실을 얻기도 했다.
독후감과 더불어 매일 30분씩 소내 방송을 통해 실시하는 한자교육도 수용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으며 매달 실시하는 자체 검정시험 응시자가 100명을 넘고 있다.
특히 매달 실시되는 독후감 경진대회에서 우수 작품으로 선정되는 수상자에게는 상장 및 상품뿐만 아니라 ‘가족만남의 날’ 행사 참석기회를 부여하는 등 수용자 처우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외래의사 초빙 진료 확대, 여자 전용 치료실 설치, 수용거실 내 개수대 설치등 수용생활 편의 인권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변화하는 직원들
수용자 인권 및 처우 문제 못지 않게 교도관에 대한 처우개선도 중요하다.
이는 장시간 노동으로 잠이 부족하거나 업무 성격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교도관들에게 재소자를 친철하게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
이처럼 교도관들의 열악한 처우와 떨어진 사기는 재소자 인권과 직결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원구치소는 다른 분야에서처럼 작은 곳에서부터 교도관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있다.
지난 4월 청사내 빈터에 다양한 수목들을 식재해 직원들의 쉼터로 활용할 수 있는 100여평의 중앙공원을 만들었다.
잡초로 가득해 무용지물이던 공간에 문을 내고 테이블을 갖다 놓으면서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거나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시킨것이다. 또 비가 오는 날이면 지붕이 없어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곧 천장을 설치하고 나면 날씨의 제약없이 구치소내 중앙공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구치소의 변화에 직원들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 8월 김안식 명적과장 등 15명은 영어회화반을 만든 뒤 매일 오전 7시20분부터 50분씩 외국인 강사를 초빙해 회화 공부를 하며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이들의 회화실력은 수준급에 이를정도.
김수희 민원실장은 “이른 시간이지만 동료들과 함께 배운다는 것이 기쁘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있다”며 “외국인 수용자가 늘어나면서 외국인들이 민원실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지만 이젠 당당하게 안내를 한다”고 말했다.
또 구치소직원들은 앞으로 매달 50만원의 성금을 모아 불우 소년수형자의 국선변호사를 선임해주고 출소 뒤에도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줄 예정이다.
수원구치소 이태희 소장은 “구치소는 혐오시설이 아닌 수원시민이 찾는 곳”이라며 “직원들 스스로 자체혁신과제를 정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흐뭇하다. 앞으로도 눈에 띄는 작은 것부터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근호기자 ghjung@kgib.co.kr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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