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600만명이 분당에 살수 있었는데

1989년 4월 27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서울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하여 분당과 일산에 500만평 규모의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일사철리로 그해 11월에 첫 아파트 분양이 시작되고 5년도 안돼서 신도시가 완성되었다. 그야말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졸속행정, 졸속건설의 대표작이었다. 그런데, 10년전에 완성된 분당과 일산이 아직은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다. 경기도내 타지역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아파트 값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분당과 일산이 완성된 이후 10년. 그동안 경기도에 건설된 아파트가 몇 채나 될까? 자그만치 150만 채이다, 150만 채면, 분당에 아파트가 그렇게 많은 것 같아도 10만채에 불과하니, 그동안 경기도에 분당 15개의 아파트 물량이 공급되었다는 이야기다. 분당 15개가 어디있을까? 불행하게도 분당 15개는 용인, 남양주, 김포, 화성 등지의 산자락 논자락에 마구잡이로 퍼져 있다. 도로망, 철도망은 물론이고 학교 등 교육시설이나 변변한 직장, 그리고 문화적 환경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아직도 난개발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만일 시계바늘을 10년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어차피 늘어나는 주택수요에 맞춰 10년동안 경기도에 150만 채의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었다면…. 왜 최소한 분당과 일산같은 도시, 아니 그보다 더 좋은 도시 15개를 만들지 못했을까? 나름대로 도로망과 철도망을 갖추고 널찍한 도시공원과 함께 학교도 잘 만들고 상업용, 업무용 빌딩도 많이 지어서 일자리도 만들고 호수공원이나 중앙공원과 같은 널찍한 시민들의 휴식처도 만들고…. 만일 그렇게만 했더라면 경기도민 1천만 명 중 600만 명이 분당보다 좋은 도시, 일산보다 좋은 도시에 살고 있을텐데. 어차피 할 걸, 왜 그렇게 못했을까?

두 가지 잘못된 생각이 있었다. 첫째로 대규모 신도시는 수도권을 과밀하게 만든다는 생각(수도권 과밀론자), 둘째로 대규모 신도시는 대규모 환경파괴라는 생각(환경론자) 때문이었다. 아파트는 지어야겠고, 이들 생각과 여론이 너무 거세다 보니 조그많게 토막 내어 분당 15개 분량의 아파트를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지은 것이다.

수도권의 과밀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행정수도 이전이나 공공기관 이전을 밀어붙이는 정부여당이 수도권 과밀론자와 환경론자들에 둘러싸여 수도권 난개발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애써 외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10년후 다시는 이런 후회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텐데….

/한현규 경기개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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