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언어의 다각적 해석이 낳은 불행

지난 10월18일 많은 언론사는 17대 첫 국정감사에 보험개발원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중고차 10대 중 6대 사고 경력”이라는 기사를 일제히 실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중고자동차 판매 2개 업체를 선정하여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중고자동차의 사고 기록을 조회한 결과 60% 정도가 1대당 1.4건의 사고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마치 전국의 모든 중고차 중 60% 정도가 사고차이며 이를 판매업자가 속이고 팔아 소비자의 주의가 요망된다는 기사를 읽고 24년간 중고차 매매업에 종사한 필자는 실소하고 말았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소비자와 판매자 그리고 보험사, 관계기관의 ‘사고 차량’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에 대하여 먼저 논하고 싶다. 먼저 A氏와 B氏 차량이 있다고 가정하자 각 차량은 야간에 뒤에 있는 물체를 확인치 못하고 후진하다 뒷 범퍼와 드렁크 부분이 부서졌다. 이 차량은 뒷 범퍼, 찌그러진 트렁크, 후미등, 부분도색에 드는 경비를 A氏는 자부담으로 처리하고 B氏는 보험혜택을 받았다. 이럴 경우, 보험사는 A氏 차량을 무사고 차량으로 B氏 차량은 사고 차량으로 볼 것이고, 법률가는 물적 피해가 있으므로 사고 차량으로 볼 것이며, 각 해당 기관은 보험사의 정보에 따라 A氏 차량은 무사고 차량, B氏 차량은 사고 차량으로 유권해석 내릴 법하다. 그러나 매매업자는 A氏와 B氏의 차량에 대하여서는 무사고 차량이라고 결론지을 것이다.

매매업계에서 사고 차량이라 함은 차량 엔진을 내려 수리하거나 용접, 차량 문짝을 교체하는 등 중대한 교체 수리를 한 차량에 대하여, 사고 차량이라 하며 사고 차량은 일반 차량 가격보다 사고 경위에 따라 그 금액을 산정하여 구매하거나 판매한다. 이렇듯 사고 차량이라 함은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 차량의 가격을 결정짓는 주요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아직도 각자의 위치에 따라 사고 차량인지 무사고 차량인지에 대한 명확한 해석 없이 중고차매매 시장만이 점점 혼탁해지고 있다. 소비자는 판매상을 불신할 것이고 판매업자는 행정 당국 등을 탓하며 소비자를 뜻하지 않게 속이는 우를 범할 것이다. 이 문제로 소비자 분쟁시 조정 기관은 보험기록 정보에 의하여 사고 차량 유무를 진단하여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지금 자동차 매매업계는 극심한 경기침체와 가격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소비자와 행정기관, 판매업체간 사고 차량의 분분한 해석으로 또 한번 홍역을 치르고 있다. 사고 차량과 정비 차량을 구분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필자에게 든다.

현재 중고 자동차의 판매율은 신차 대비 130% 수준이며 자동차 선진국형인 신차대비 150%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매매업체 종사자들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꿈에 부풀어 이 업에 미련을 두고 정진하고 있다. 신차가 잘 팔리면 중고차 시장은 호황이다. 중고차 시장이 호황이면 신차 판매가 활성화된다. 중고자동차 매매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동차를 판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차량을 매입하고 분류하여 수출시장에 내놓거나, 국내시장에 내놓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이라는 특단의 조치보다 작은 부분의 불합리함을 개선하는 것이 원활한 시장 경제를 만드는 지름길이라 생각되며, 거창한 구호나 통제보다 합리적이고 원칙적인 기준이 경직된 시장구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불어 닥친 국내 자동차 매매시장의 불황의 골은 깊어만 가는데, 폐업하는 동료 업체 수는 날로 늘어나는데, 같이 근무하던 자동차 매매 종사원은 떠나는데, 지금 하필 이렇게 힘들 때 차량의 60%가 사고 차량(?)이라니! 지금 소비자들은 언론 기사의 사고 차량이 사고 난 차량 인 줄 알고 있으며 소비자를 현혹하여 팔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슴이 답답하여 하늘을 쳐다 보지만 24년차 매매업체 베테랑도 한 숨만 나올 뿐이다.

언어의 다각적 해석이 낳은 불행을 막지 못하고 동일한 언어를 쓰면서도 시원하게 설명할 수 없는, 그래서 각자 해석하고 이해하여 우리 스스로 자멸하는 모두의 불행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그래도 이 힘든 시기를 이겨보려 애쓰는 매매업계 동료들을 보면서 우린 아직도 옛날 옛적의 어여쁜 백성일 뿐인가 싶다.

/이명선 경기도자동차매매사업조합 남부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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