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행정특별시’는 또 뭔가?

대통령이 그냥 가만히 안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지 못한 건 아니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의 위헌결정이 난지 얼마 안 되어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던 ‘행정특별시’란 게 본격적으로 가열되고 있다. 위헌결정이 날 경우를 대비해 미리 세워두었던 대안의 계획일 수 있다. 다만 발표를 12월 중순으로 미루고 있는 것은 약간의 이 눈치 저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업어치나 메어치나 결과는 같다. 신행정수도나 행정특별시나 그게 그것이다. 청와대와 외교안보부처 그리고 국회와 사법부 수뇌는 서울에 그대로 둔다지만 이게 눈감고 아웅하는 격이다. ‘나머지는 옮길 수 있는 건 다 옮긴다’는 게 이미 정리된 청와대 내부 방침이다. 이렇게 해서 옮기는 정부 기관이 15부4처3청을 비롯하여 60여 개나 된다. 이만이 아니다. 제2청와댄가 청와대분손가도 만들고 미처 못옮긴 기관은 다음에 마저 다 옮길 요량으로 부지를 비워둔다는 것이다.

지금의 서울은 수도 개념에 필요한 최소한의 형식 요건만 남기는 게 이른바 대통령이 밝힌 바 있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저촉되지 않는 대안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꼼수는 누가 봐도 사실상 신행정수도와 다름이 없는 편법논리다. 위헌결정의 취의에도 어긋난다.

여권은 행정특별시를 고집하는 이유로 충청권 민심 수습을 들면서 야권도 충청표를 의식해 드러내 놓고 반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특정지역을 의식한 구태 정치가 가져온 망국적 지역감정을 명색이 개혁을 한다는 이 정권이 한술 더 떠 즐기고 있다.

이러면서 수도권 달래기로 수도권 규제완화 등 재정비 계획도 함께 포함할 것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가관이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이러면 되고 저러면 안되는 저잣판의 흥정거리가 아니다.

대통령은 걸핏하면 수도권이기주의를 말한다. “지방의 지역이기주의와 수도권의 지역이기주의는 다르게 봐야 한다”면서 수도권이 지역이기주의를 앞세우면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된다고도 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호 보완 관계를 도외시한 그같은 대립각은 정말 위험한 시각이다. 수도권의 지역이기주의가 지방의 지역이기주의를 침해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 대학 설립이나 입시정원 배정에 불이익을 받는 등 예를 들자면 얼마든지 있다. 수도권의 국제경쟁력을 국가적 안목으로 확보하면서 발전 이익을 타지역과 공유하려는 것을 수도권이기주의로 매도하는 건 국익을 외면한 정치공세다.

수도권 비대는 행정수요만 가중하므로 바라는 일이 아닌 데도, 중앙정부가 신도시다 대단위택지개발이다 하여 인구 과밀을 유발해 놓고 이를 트집잡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신행정수도 형태의 행정특별시를 또 고집하는 이유를 이 정권은 예의 지방균형발전을 들먹인다. 생각해 보자, 행정특별시 또한 천문학적 국민부담만 가져올 뿐 정작 전국의 균형발전을 가져올 근거는 발견할 수 없다. 참다운 지방균형발전은 그런 물리적 개념에 있지 않다. 기능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권능을 지방정부에 대폭 이관하는 것이 제대로 된 지방균형발전의 동력이다. 이 정권의 지방분권론은 허구다. 그동안 2년이 가깝도록 뭐하나 지방에 제대로 넘겨준 게 없다. 예컨대 국토이용계획은 개요만 중앙정부가 설정하고 집행계획은 지방정부 책임으로 넘겨야 한다. 신도시 조성 같은 것을 지방정부 협의없이 중앙정부 멋대로 하는 게 지방분권인 건 아니다.

중앙집권의 배급관념으로 여기는 지방균형발전론은 허상이다. 국가경영의 상위 골격을 제외한 중·하위 권능은 모두 지방에 넘겨 지방정부간에 지역 특성의 창의적 공익 경쟁을 유발케 하는 것이 제대로 가는 지방균형발전이다. 행정특별시와 지방균형발전은 이처럼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이 정권의 청개구리 취향은 행정특별시란 괴물을 우길 게 틀림이 없다. 물론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므로 이도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국회에서 통과될 지 잘 모르겠지만, 통과되어도 국민투표에 부치는 단서가 붙지 않으면 또 헌법소원이 제기될 공산이 많다.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을 거부한다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재량권 일탈의 권한 남용이라는 지적을 또 들을 수 있다.

선량한 충청인들을 한 번도 아니고 이번엔 행정특별시란 작명소 같은 이름 짓기로 두 번이나 속인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충청도 민심을 헤아리고자 하면 미흡해도 다른 차선책을 강구하는 것이 정직한 자세다. 노무현 정권 내내 되지않는 대선 선심의 일로 국력을 낭비할 것만 같아 심히 걱정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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