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대통령의 말, 말

‘노무현 대통령의 화법은 단순한 실수나 무식, 생각의 모자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 효과를 노리는 의도적 수단이다.’(정윤재 정신문화연구원 교수·2003년 3월 ‘대통령과 한국의 정치문화’ 논문) 이 말대로라면 실수하거나 무식하고 생각이 못 미친 게 아니고 일부러 그런 투로 말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으로서는 뉘앙스가 듣기 좋을 것 같다.

“(그동안 우리가) 뛰면서 생각하니까 헷갈리기도 했다.”(2003년 6월 수석·보좌관회의) 민중은 더 헷갈린다. “종잡을 수 없다”고들 말한다. 자신의 불법 대선자금이 상대 후보 진영의 10분의 1이니, 티코와 리무진이니 하는 비교화법은 지도자의 윤리성에 어긋난다. “이쯤하면 막가자는 것” “대통령직을 못 해 먹겠다”는 등의 직설형은 할 말이 못 된다. 국회 파행을 가져온 이해찬 국무총리의 막가는 독설은 대통령을 닮아 보이려고 하는 직설화법의 승계다. “말 많이 한다고 탈권위는 아니니 말을 줄여주기 바란다. 말을 할 때는 할 말, 안 할 말 신중하게 가려야 말을 믿을 수가 있다” 이것은 민주노총의 성명서 요지다.(2003년 11월·제목 ‘할 말이 많아서 슬픈 노무현이여!’)

농담형도 있다. “국민의 정부가 겪었던 여러가지 실패의 과정들이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불안한 느낌을 받는다”(2003년 4월·문화일보 인터뷰) 그러고는 “어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엄살을 좀 떨었다. 참 우울하다고 했다”(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 ‘국정과제TF워크숍’)

식언형은 이미 위헌결정이 나긴 했지만 수도이전 문제를 예로 들어본다. “한나라당이 수도 이전에 따른 비용 문제를 부풀려 비판하고 있는데 필요하면 국민투표에 부칠 수도 있다”(2002년 10월·내일신문과의 후보 인터뷰) “국민적 합의를 요구하는 문제이므로 국민투표에 부쳐서 결정하겠다”(2002년 12월·부산 서면 후보유세) “당선후 1년 이내에 국민 합의를 도출해 국민투표로 최종 결정하겠다”(2003년 12월·KBS1 TV 후보연설) “여야간 충돌 때문에 국회에서 저지되면 돌파하기 위한 차선의 방법으로 말한 것이다”(2003년 2월· 대전 국정토론회) “국민투표하면 탄핵이 먼저 생각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2004년 6월·언론사 경제부장과의 만찬회동)

‘공기업·산하단체장의 인사원칙은 효율성·공익성·개혁성이다.’(2003년 1월 당선자 인수위 지시) “농부는 때가 되면 밭에서 잡초를 뽑아낸다”(개혁을 발목잡는 정치인을 가리켜·2003년 5월·청와대 홈페이지 e메일)

궁금하다. 개혁의 실체가 의문시되고, 정부 산하기관에 낙하산부대가 대거 투하되고, 청와대는 특진해방구가 되고, 친여 예술단체와 친여 시민단체에 나가는 무더기 지원금 등 이밖에도 허다한 반개혁성 신기득권 양상도 개혁인지 묻는다.

“세상이 진보와 보수로 양분화되던 시대는 끝난 것 같다”(2004년 3월·민노총 지도부 오찬 간담회) “경제의 핵심적 문제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 근로자와 중소기업 근로자로 나뉜 양극화 문제다”(2004년 8월·열린우리당 지도부 오찬) 양분화시대를 부인하면서 상호 보완기능의 해결 방안을 양극의 대립각으로 보는 시각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역시 외국에 나와 보니 기업이 바로 나라다 하는 생각이 든다”(2004년 9월·러시아 방문 중 기업인과의 다과회) “기업활동에 대한 여러가지 애로와 장애를 풀어가는 데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2004년 10월·베트남 방문 중) 모순형의 대표적 사례다. 재계가 반기업법으로 꼽는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국회에 계류중인 13건 법안에 대한 검토요청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공장 하나 짓는데도 무려 68가지의 규제사항으로 6개월이나 걸리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은 창업절차가 12단계로 145개국 중 104번째를 차지할 만큼 기업하기가 어려운 나라다.(세계은행 ‘기업활동 2004보고서’)

간첩이나 사노맹 출신이 의문사위 조사관이 되고, 전향을 거부한 빨치산 등이 민주화 인사가 되는가 하면, 탈북자 ‘자유북한방송’이 협박을 받고, 김일성을 창조적 이념주의자로 둔갑시킨 교과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세상이 됐다.(위대한 장군님께서 남조선 진보세력의 활동공간을 넓혀주고 극소수 반공 보수분자들을 고립시킨 결과다·조선로동당 출판 강연자료)

최근 서울대 교수 협의회 토론회는 ‘사회분열과 반지성주의의 위험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나를) 과격하고 좌파로 보는 우려는 좋은 평가가 아니다. 사실이 아니다”(2003년 2월·당선자로 미 헤리티지재단에서)

이에 대한 평가는 민중의 몫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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