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놈의 세상을 한번 확 바꿔버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려서 너무나 가난하였고 커서도 대학을 갈 수 없었던 형편에서 유일한 출세의 돌파구는 사법시험 뿐으로 여겼던 것 같다.
총명한 머리에 가슴은 한(恨)으로 찌들면서 타고난 옹고집 성격은 더 거칠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으로 득의와 좌절을 거듭 맛보는 외로움 속에서도 오뚝이같은 돌파력과 도박사 같은 승부기질은 그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정상을 쟁취하는데 따른 운(運)이라 할까, 이런 시운도 스스로 만들어 거머쥐었다. 실로 천신만고의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국가균형발전, 지방분권, 동북아경제중심국가 건설을 내세웠다. 이 정권은 수도이전과 함께 이를 4대 국가발전전략으로 표방했다. 그랬던 것이 둑이 무너졌다고 한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의 위헌결정으로 나머지 전략의 기본 틀이 흔들리는 것은 수도이전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란 게 이 정권 내부에서 나오는 소리다.
그러나 계획이 거창하고 간판만 그럴듯 하다고 하여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정책 구상이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조직적이어야 하고 추진 절차가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 나름대로 야심만만한 작품의 제목은 대통령으로서 능히 부칠만 하다. 문제는 조직성과 합리성의 결여다.
국가(지방)균형발전을 거부할 정신나간 사람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입안에 든 것을 빼앗아 다른 입에 넣어주는 것이 국가균형발전인 것은 아니다. 여기에 공장 하나가 있으므로 저기에도 공장 하나를 세우는 것이 지방균형발전은 아니다. 수치적 개념에서 기능적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인체는 처방약이 체질에 따라 다르고 지역은 특색에 따라 발전 방향이 다르다.
이 정권에서 무엇보다 말잔치 만이 무성한 것이 지방분권론이다. 1년8개월 동안을 이래 왔다. 아니 속셈은 오히려 지방홀대의 냄새가 짙다. 예컨대 이 정권이 신설하려는 종합부동산세 국세화는 지방세의 요체인 보유세의 근간을 위협한다.
동북아경제중심국가 건설은 정말 좋다. 수도권을 동북아 물류 및 정보기술 비즈니스의 중심도시로 육성, 경제중추지역으로 발전시키려는 청사진은 수도권에서도 작심하고 있는 여망이다. 그러나 이 계획이 서울이 수도인 게 거추장스런 이유는 하나도 없다. 투자활성화를 위한 세제혜택 및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등 산업인프라 구축이 시급한데도 이 정권은 되레 수도권이기주의라며 이를 저해한다.
천도(遷都)는 이 정권이 내포하고 있는 근원적 모순의 결함이다. 자그마치 160조원이 들어도 후대를 위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해야겠지만, 그보다 훨씬 적게 든다 하여도 가치성의 발견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결국 이의 차이는 관념적 인식의 차이다. 지금은 정치논리가 경제논리 우위의 시대가 아니다. 이러함에도 정치논리 우선의 관점에 근거를 두려는 무리함이 헛바퀴 소리가 요란한 괴리현상을 가져오고 있다.
실로 그의 지나온 인생길은 가히 입지전적이다. 이러한 인간승리에 훼손을 가져오는 대통령의 옹고집은 실로 유감이다. 물론 안다. 결단과 추진력이 있어야 국가를 신념에 따라 다스릴 수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민중적 기반을 잃어서는 설득력이 없다.
지금은 김해 땅의 못사는 진영동네와 잘사는 읍내로 구분되는 시대가 아니다. 읍내 아이의 책가방을 찢어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도 아니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의 위헌결정에도 불구하고 사실상의 천도를 획책하고자 하는 것은 이 시대의 요구가 아니다. 헌법재판소를 억압하는 힐난은 그가 말한 헌정질서를 되레 어지럽힌다. 어느 측근은 말했다. “대통령은 혁명적으로 일 하고 있다”는 그 측근의 말이 아니어도 세상을 한번 뒤바꿔 보고싶어 하는 심경을 미루어 짐작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恨)풀이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간곤한 광복운동을 벌인 독립운동가가 광복된 나라에서 위대한 정치지도자가 될 수 없었던 예가 있다. 간곤한 민주화운동가가 유능한 정치지도자가 아닌 예가 또한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투지가 아닌 경륜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빌어먹을 놈의 세상이 아닌데 그렇게 돌아가게 만든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열린 마음으로 눈을 더 크게 뜨는 반성을 구하는 것은 나라와 민중을 위해서인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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