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행정수도 이전의 허와 실

①강남 집값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 할 때, 누가 이런 제안을 했다. 강남 한복판에 세계 최대의 분뇨처리장을 만들자. 강남 집값이 뚝 떨어질텐데…. ②수학여행을 가던 초등학생들이 철도 건널목에서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철도사고를 근절하라는 대통령 지시에 교육부 장관이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앞으로 초등학생은 수학여행을 절대 안 보내겠습니다. ③ 수도권은 너무 크고 지방은 너무 작아서 온 나라가 골머리를 썩고 있을 때, 누군가 이런 생각을 했다. 수도권에서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을 확 뽑아서 지방에다 뿌리면 될 텐데….

이들 이야기가 뭔가 우습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세 이야기 모두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많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에서는 행정수도 이전이 수도권의 과밀문제와 지방의 과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단한 정책인 양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정권을 걸고서라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정권을 걸고 추진할 만한 일인가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보자. 우선 수도권 과밀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신행정수도에 50만명의 인구가 빠져나간다고 한다. 50만명이면 수도권 인구가 지금 2천300만명이니 얼추 50명중 1명 꼴이다. 승객 50명의 버스에서 한 명의 승객이 내린다고 버스 안이 넉넉해 질 수 있을까? 공공기관까지 이전해서 또 다른 한 명이 빠져 나가면 좀 넉넉해 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글쎄 올시다’이다. 더구나 그 빈자리를 행정수도 대신에 경제수도를 만든다는 이유로 민간회사나 들어올 셈 치면 수도권이 더 복잡해 질까 걱정이다. 그래도 지방에는 도움이 될 것 아닌가? 물론 지방 발전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이다.

답: 기껏해야 수도권이 잃는 것 만큼, 지방에 도움이 된다. 이런 걸 보고 제로-섬 게임이라 한다. 각 지역에 흩어져서 제대로 유기적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중앙부처나 공공기관의 질적 기능저하까지 따진다면 이는 마이너스-섬 게임이 분명하다. 수도권의 희생이 국가 전체적으로 득이 된다면, 즉 수도권에서 잃는 것 보다 지방에서 얻는 것이 더 많다면, 지역의 이해관계를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수도권 주민들도 정부정책에 협력할 수 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수도권 주민의 희생은 헛된 희생이다.

/한현규 경기개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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