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붉은 가슴의 전사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밤이 될 때까지 TV를 봤다. 마침 고릴라들의 생활상을 소개하는 ‘붉은 가슴의 전사들’이 방영됐다. 수컷 고릴라 한 마리가 30여마리의 암컷과 새끼들을 거느리고 집단의 수장으로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30여마리의 대 집단을 이끌어온 것으로 보아 수컷 고릴라는 정력이 왕성하고 리더십이 있음에 틀림없다. 외적으로 다른 집단의 고릴라와 사자, 치타, 하이에나와 같은 짐승들의 공격을 막아야 하고, 내적으로는 젊은 수컷 고릴라의 도전을 차단하고 구성원간의 위계질서를 공고히 해야만 리더십이 유지되고 집단이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사회에서도 권불십년이란 말이 있듯이 수컷 고릴라에게도 세월 따라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멀리서 수 고릴라로 구성된 무리가 공격의 거리를 좁혀 오면서 항복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수장 고릴라가 분투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다음은 수장 자리를 놓고 침입자의 수컷 고릴라들 사이에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고, 곧 바로 무리를 이끌어갈 새 지도자가 탄생했다. 권력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불안에 떨던 암컷 고릴라와 새끼들은 아무런 저항없이 새 지도자를 받아들였다. 나는 가스 불 위에 올려놓은 된장찌개가 타는 줄도 모르고 권력다툼에서 패배한 전임 리더가 어떤 행동을 보일까 하는데만 몰두했다.

구성원들이 보는 가운데 장렬하게 죽음을 택함으로써 영원한 지도자로 남을까. 그렇지 않으면 구차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을 가버릴까. 결과는 나의 모든 예상을 뒤엎고 새로운 형태의 선택을 했다. 새로 탄생한 지도자에게 축하를 하고 타협을 하는 것이었다. 타협의 결과는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유지하되 아내와는 절연을 해야했고 대신 자기가 낳은 새끼들을 돌볼 수 있는 의무와 권한을 부여 받았다. 승자는 승자로서의, 패자는 패자로서의 명분과 실리를 서로 주고받은 것이다. 인간은 원래 미완성으로 살아가는데 더 큰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완전하다면 사회 자체가 존재할 수 없을 것 아닌가.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그 부족함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채우고 보완하는 것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과 인내를 갖고 타협하고 관용하는 것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임낙윤 인천.경기지방병무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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