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여름 상해. 모택동 외 11명의 대표로 중국 공산당이 탄생하였다. 1934년 10월 16일. 장개석군에 쫓기어 홍군(紅軍)은 전략적 후퇴를 시작한다. 우선 적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 그들에게는 합의된 목적지조차 없다. 눈덮인 산맥들과 세찬 강물을 건너고 늪지와 숲을 지난다. 비적떼가 우글대는 지역, 호전적인 부족이 사는 땅, 물이 없어 자기들의 오줌을 받아먹으면서 간신히 연명할 수 있는 사막을 가로지른다. 죽음을 동반한 마지막 운명의 산 대설산(大雪山)을 넘는 것은 서로 싸우고 죽이는 전쟁보다 더 힘든 자연과의 싸움이었다.
8만여명의 홍군 중 대설산을 넘어 살아남은 자는 4분의 1인 2만명. 무려 11개 성(省)을 거쳐 18개의 산맥, 24개의 강과 사막, 늪지대를 지나 장장 9,600㎞의 거리다. 1년을 꼬박 걸어서 런던에서 동경까지, 미대륙을 동서로 왕복한 거리, 서울~부산의 28배 달하는 거리, 2만 5천리의 대장정이었다.
여자는 35명 가운데 단 6명만이 살아남았고, 長征중에 모택동의 처 하자정은 아이를 낳았지만 돌볼 수가 없어 태어난지 몇 시간 안 된 갓난아기를 보자기에 싸서 은화 24닢과 함께 농부에게 맡겼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하에 그네들이 준수한 생존수칙이 있었다.
첫째, 명령에 절대 복종할 것. 둘째, 민중들로부터 바늘하나, 실 한오라기도 빼앗지 말 것. 셋째, 사용한 모든 물품은 틀림없이 돌려 줄 것.
이렇게 사선을 넘고 넘어 모택동, 주은래, 등소평 등등의 이름을 앞세우며 1949년 10월 1일에 中華人民共和國은 건설되었다. 적어도 중국공산당 혁명 1세대들은 역사앞에 당당하였다. 무엇보다 개인의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大義가 있었다. 그러기에 등소평은 UN에서 행한 연설에서 ‘만약 훗날 중국이 강대해져서 주변국들에게 교만하게 된다면 중국의 社會帝國主義를 고발하고 비판해야 된다’고 스스로 선언한다. 중국의 양심, 중국인민의 영원한 총리 주은래는 말한다. 한족(漢族)은 소수민족의 역사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 후진타오를 비롯한 중국지도부는 전문기술관료 출신들이다. 동북공정이란 역사조작의 모습을 보라. 천안문에 걸려있는 모택동의 초상과 世界萬民一切라는 大義의 사회주의 사상에 비춰 너무나 초라하다. 개인이나 국가나 철학이 없는 기술은 위험한 면도칼이다.
우리 청소년들 중 동북공정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역사를 배우고 사유(思惟)함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다.
/송기출 수원청소년문화센터관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