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운림산방

몇 해 전 우연히 남도 여행을 하다 진도에 들렀었다. 그때는 진도에 대해 아는 것 이라곤 진돗개와 홍주 정도였지만 그 후로는 여행을 떠나게 되면 늘 진도를 가게 되곤 했는데, 그 이유는 그날 처음 만난 이후 늘 그리워하는 운림산방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운림산방을 안고 있는 첨찰산 뒤편의 모사라는 작고 아름다운 해변 때문이었다.

며칠 전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난 올 여름 휴가도 가다보니 어느새 또 진도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밤새 달려 도착한 진도. 황구와 백구가 나란히 서있는 진도 다리를 지나 먼저 모사를 찾았으나 잘 생긴 소나무들을 병풍처럼 가리고 있던 곱고 소박한 해변 모사는 조개종자를 키우는 양식장으로 변해 그 곱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서운한 마음을 달래며 운림산방엘 갔다. 운림산방은 전 보다 더 고운 모습으로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지난번에 갔을 때만해도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것처럼 낡아가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정성껏 수리하고 가꾸어진 깔끔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어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운림산방은 조선조 후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련선생이 쓰던 화실의 당호로 소허암(小許庵) 또는 운림각(雲林閣)이라고 불렸었는데 1982년 소치선생의 3대손 남농(南農) 허건선생에 의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진도 소치선생의 집안은 또한 소치 선생이후 이대 미산(米山), 삼대 남농(南農)선생등을 배출하고 4대에 이르러서도 화업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어 그 또한 범상치 않은 일로 생각된다.

현재 운림산방은 진도군에서 관리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소치 기념관을 주변과 같이 한옥으로 잘 지어 소치와 미산, 남농등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역시 아쉽고 걱정스러운 점이 있었는데, 첫째는 명색이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대가의 기념관(미술관이라 해야 옳다)에 전문적인 큐레이터가 단 한사람도 없다는 점, 둘째는 소치, 미산, 남농이라는 대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 현재 생존한 후손들의 작품들이 마치 같은 반열인양 오히려 더 크고 화려하게 전시되어있는 점이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이미 소치, 미산, 남농은 그 자손들만의 자랑스런 선조라는 관점을 크게 벗어난, 우리 미술계의 역사적 자산이며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그 후손들의 짧은 생각으로 자칫 그들의 가치마저도 훼손 될까 심히 염려된다.

/이승미 과천 제비울미술관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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