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높고자하거든 먼저 낮추라

어느 때 교도님 한 분이 글씨가 새겨 있는 작은 나무판 하나를 가져와 필요하면 교당에 두고 보시라고 한다. 받아서 보니 추사 김정희 글씨를 탁본받아 새긴 것인데 처음에는 약간 초서 비슷한 흘림체로 써있어서 무슨 글씨인지를 쉽게 알아보지 못하였다.

글씨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기에도 참으로 힘있고 잘 써진 글씨였다.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글씨다. 무슨 글일까? 화두가 생겨 궁구하다가 글의 연관성을 생각하여 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하 이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나서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구하니 다 공감한다.

거기에 써있는 글은 ‘欲尊先謙 過難成祥’이다. 새겨보니 높기를 원하거든 먼저 겸손하고 어려움이 지나면 상서로움이 이루어지나니라 하는 뜻인 듯하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평범한듯하나 여기에는 깊은 이치가 들어있다.

원불교에는 ‘恩生於害 害生於恩’이란 말이 있다. 은혜는 해에서 나오고 해독은 은혜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모순되는 말인 것 같으나 실은 여기에 인생의 철학이 있다. 마치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낮이 지나면 밤이 오는 것이 이치며 추운 겨울이 가야 따뜻한 봄이 오고 더운 여름이 지나야 추운 겨울이 오는 것처럼 이 세상의 일도 먼저 나를 낮추어야 높아지는 이치가 있고 어려움을 잘 지내고 나면 상서로운 좋은 일이 오는 이치가 있다는 말이다.

성자 철인들은 이러한 이치에 통달하여 마음을 쓰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운 경계에서도 미래의 복락을 위하여 잘 감내하고 준비하는 생활을 하며 설사 세상의 배척을 받고 버림을 받는다 할지라도 거기에 원망을 두지 아니하고 세상을 받들기 때문에 결국 천하 대중이 다 숭배하는 가장 높은 인물이 되신 것이다.

요즈음도 한 번씩 그 글을 쳐다보며 마음을 챙겨본다. 높기를 원하거든 먼저 너 자신을 낮추고 아무리 어려운 일도 반드시 그 뒤에는 상서로움이 뒤따르는 것이니 그 좋은 일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잘 감내하라.

/김주원.원불교 경인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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