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이던가. 참여정부 출발 한달여가 지났을 때다. 정권 초기라 정치개혁이 화두였다. 온 사회가 시끄러웠다. 이틈에 농협개혁도 삐져나왔다. 농협중앙회가 앞장섰다. 선수를 친 것이다. 농민단체들이 가세하여 농협개혁위원회도 출범되었다. 모양새는 ‘자율개혁’이었다. 하지만 알만한 농업인들은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또 농협개혁?” 그 이후 농협개혁을 둘러싼 공방은 거셌다. 하지만 1년이 지난 농협개혁은 자율에서 타율로 변질되었다. 예상됐던 결론이었다. 개혁 마인드가 전무했고 정권에 생색내기가 급했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올봄 파주 교하농협과 구미의 장천농협의 해산이라는 수모로 이어졌다. 조합원들의 요구에 의해서였다. 이렇게 개혁도 명제보다는 순수성이 없으면 이뤄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요즘 농촌진흥청에 부는 개혁바람은 신선한 충격이다. “농진청간부 전원 사표…과장급이상 179명 동참…청장, 구조조정후 60여명 명퇴처리 방침”이라는 기사가 활자화 된 것은 지난달 7월28일이었다. 눈을 의심했다. “어, 179명이…농진청에서…명퇴?” 여러 생각이 교차됐지만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농진청의 개혁발상 그 자체가 참신성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한 시골 마을, 호박꽃에서 볼 수 있는 뒤영벌(일명, 호박벌)의 화분수정 모습은 볼수록 재미있었다. 그 인연으로 호박벌을 연구하는 진흥청 윤형주 박사를 만났다. 윤 박사의 연구 제목은 ‘호박벌의 대량증식’. 호박벌을 대량 증식시켜 농가에 보급하면 여름 토마토나 가지농가에서 사람을 대신해 화분받이농사를 잘 해준다. 하지만 이 연구는 10여년이 지난 2001년에 성공했지만 아직도 미완성이다. 벌 산란율이 평균적으로 90%는 돼야 하는데 들쭉날쭉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농촌보급은 아직도 미흡하다. 만약 윤 박사의 이 연구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수입대체 효과는 100억원에 달한다.
농업계에는 수많은 조직이 있다. 거기에는 꼭 있어야할 필요조직이 대부분이지만 없어져야할 조직도 꽤 된다. 또 필요조직 중에서도 존치될 당위성보다 강하게 개혁을 요구받는 곳도 여럿 있다. ‘농협’만 개혁의 대상이 아니다. 농협 못지않게 농업기반공사 등도 그 개혁범주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농촌진흥청은 어떤가? 꼭 필요한 조직이지만 개혁대상임에는 틀림없다. 과거 농진청은 우리농업의 희망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역할에 따라서 우리농업의 미래가 예측되기 때문이다. 농진청을 가보라. 윤 박사가 연구 중인 호박벌 같은 프로젝트들이 많다. 모두 보물급이다. 연구지도직이 1천200명이 넘는데 그 중에서 박사급만도 739명이다. 여기서 그 유명한 통일벼가 나왔고 세계수출국 12위라는 한국의 국력도 나왔다. 최근에도 진흥청은 세계 최초 tPA라는 혈전증 치료물질을 돼지에서 개발해 냈고 일본으로 수출하는 오리엔탈나리, 핑크레이디 장미, 누에그라 등 다양한 연구로 우리농업의 희망이 되고자한다. 토종 유전자원의 DNA 뱅크 구축추진도 식물유전자 확보차원에서 우리 농진청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진흥청은 이렇게 해서 한국의 농업과학기술의 수준을 현재 OECD수준에서 2010년에는 G7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 또한 숨길 수 없다. 연구 역동성의 문제다. 이런저런 연구발표가 나오지만 실제 따지고 보면 우리농촌에 직접 적용되는 획기적(?)인 사례는 ‘없다’. 올해 진흥청 예산은 4천200억원 규모. 핵심연구 프로젝트가 100개가 된다해도 그리 모자라는 연구비는 아닐것이다. 한개라도 히트 상품이 나온다면 4천억원 예산이 1조원이 된들 뭐라할까? 이렇다할 연구실적이 없는 게 문제다. 이때 농진청 개혁은 강하게 요구받는다. 농업인이 이번 농진청 개혁에 거는 바람은 강하다. 진정한 연구기관으로의 환골탈태다. 농업연구 경쟁력 키우기다. 신선한 개혁바람이 잘 불었으면 좋겠다. 새 리더십에 성공을 빈다.
/신동헌 전국농민단체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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