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을 찾아 이곳저곳 헤집고 다니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라. 봄에 밭갈고, 씨뿌리고 보살피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 여름과 겨울은 어떠한가? 한여름의 뙤약볕이 없다면 곡식은 영글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혹한의 대설주의보를 맞아야하는 인간의 모습은 상상치 못할 만큼 초라할 것이다.
세상의 주인은 자연이고 인간은 객에 불과하다. 기술과 문화가 제아무리 발전한다해도 뭘 먹어야 살 것 아닌가. 먹거리를 우리에게 주는 근본은 하늘이며 땅이다. 지금 하늘이 우리에게 먹거리를 주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풀무질을 고되게 하고 있다. 더위는 곡식을 영글게 하는 하늘의 노역이다. 이 더위가 어찌 감사하지 아니한가.
그러나, 참 덥다. 폭염과 열대야가 한창인 요즘 피서를 간 사람들도 있지만 도심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짜증스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럴때 내 동네에서 더위를 식혀줄 작은 이벤트라도 있다면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음악회라 하면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큰 공연장에서 무게를 잡는 엄숙한 분위기를 연상한다. 일렬로 놓여진 의자에 빼곡이 앉아 수동적으로 들려주는 음악을 듣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음악은 어디에서나 흘러나올 수 있고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들을 수도 있는 것이다.
수원청소년문화센터, 경기도 문화의 전당 등에서 한여름밤의 열대야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8월의 저녁 뒷하늘로 노을이 아름답게 지고 있는 야외무대, 추억의 노래를 들려주는 작은 악단이 공연을 한다. 아이들은 뒤편에서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를 탄다. 10대들은 웃통벗고 농구코트를 누빈다. 부모들은 벤치에 앉아 노래를 듣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풀밭 돗자리에서 손주의 잠자리를 돌본다. 미루나무에선 매미가 추임새를 넣는다. 구름은 이모양 저모양을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이 지난날의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는 자유스러움에 대해서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이런 작은 것에서 자연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살아있는 삶이 아니겠는가? 도심속에서 펼쳐지는 작은 음악회가 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하나의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밤도 더위가 고맙다
/송기출 수원청소년문화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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