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8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복싱은 세계 챔피언 네댓 명을 동시에 보유한 복싱 강국이었다. 60연대 김기수를 시작으로 장정구, 유명우, 홍수환 등 세계적인 복서가 즐비했다. 우리나라 첫 세계챔피언인 김기수는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로부터 타이틀을 뺏던 날 시내 호텔에서 장충체육관까지 가는데 교차로 신호 여덟 개가 모두 파란불이었다고 한다
염동균이라는 선수도 있었다. 그에 대한 기억은 경기 모습보다는 승리의 인터뷰때 늘 빼놓지 않고 말하던 ‘모 야쿠르트 사장님께 감사드리고’이다. 팬들은 이번엔 까먹고 얘기하지 않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지만 그는 어김없이 말하곤 했다.
유명우는 우리나라 세계챔피언 중에는 가장 오랜동안 타이틀을 유지했던 선수다. 똑똑했다. 상대의 펀치에 맞아 눈이 퉁퉁 부었을 때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홍수환도 빼놓을 순 없다. 세계적인 두뇌 복서였고 근성의 복서였다. 소위 진정한 프로였다. 수년전 방송국에서 만났을 때 인사를 나누다 그의 주먹에 약간의 상처가 난 것을 보곤 물었다. “왜 상처가?” “까부는 친구가 있어서 그냥 한방…” 아직도 그는 에너지가 넘친다. 마치 4전5기를 이루곤 “짜식이 건방져서 이겼습니다.” 했듯이.
그런가하면 김사왕이란 선수도 있었다. 아시아권에선 무쇠 주먹으로 KO행진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아주 약한 상대를 맞아서 의외로 KO를 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유는 1라운드부터 마지막 라운드까지 시종일관 강펀치만 날린다. 상대는 그 강펀치를 맞을 준비를 하고 맞기에 충격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제 힘에 겨워 스스로 쓰러지는 날도 있었다.
복싱에서 느닷없지만 정치로 얘기를 옮겨 본다. 이제 1년반 정도된 참여정부는 어찌보면 자기 주먹만 믿고 계속해서 강타만 내던지는 복서를 연상케 한다. 세상 모든 일에는 강온이 있고 템포가 있는 법인데 도대체 국민들에게 숨 쉴 겨를을 안 준다. 자칫 그러다 제 힘에 제가 넘어지면 어쩌나.
야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 자신이 야당이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을 전제로 말한다. 정부 여당의 힘만 믿고 계속해서 밀어 붙이기만 한다면 야당은 맞을 준비를 하고 맞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내성이 생기고 야성은 갈수록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여당이 꼭 유념해야 할 점은 지난 3월에 있었던 탄핵의 교훈이다. 탄핵의 결과는 힘으로 밀어붙인 다수당인 야당에 대해 국민이 외면을 했다는 점이다. 뜬금없는 유신을 들먹이며 다수의 힘의 정치가 계속된다면 탄핵의 교훈은 여당 몫이 될 것이다.
/한선교.국회의원(용인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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