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류 열풍의 진정한 의미

“한국은 알면 알수록 참 재미있는 나라예요” 친구들과 한국어를 배운지 1년이 넘었다는 교토 동지사대의 한 여학생이 던진 말은 긴 여운을 남긴다. 한류 열풍에 휩쓸린 일본 청소년들의 관심이 온통 한국의 대중 문화와 스타에만 쏠리는데 비해, 그녀는 차분하게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한류의 위세는 겨울연가와 욘사마(배용준)에 대해 거듭 언급하고 나선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에서도 충분히 확인되는 일이다. 우리 드라마 한편이 파생하는 경제적 부가가치가 7천억원이나 된다는 이야기도 반가운 소식이지만, 무엇보다 한류 열풍으로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기가 수월해졌다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일 양국에서 주목하고 있는 한류 열풍은 과연 갑자기 돌출한 이색 기류였을까? 이미 삼국시대에 한류 열풍의 초기 버전이 일본에 상륙했음을 너무 쉽게 잊지는 않았을까? 당시 오사카와 나라 거주민의 대부분이 한인이었으며, 이들이 일본의 주류사회를 형성하여 한국의 고대문화를 전파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실체이기도 하다. 이처럼 고대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빚어낸 한류 열풍을 회상해 보면, 21세기 한류 열풍도 일시적 유행으로 지나쳐서는 안될 것 같다. 한류의 역동적 에너지에는 그간 한국과 한국인을 폄하해 온 일본인의 편향적 사고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저력이 분출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일본에 부는 한류의 주체는 일본 측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인이 우연히도 그들의 정서적 공감대에 맞아 떨어진 한국 드라마를 발견하고, 열광하는 형국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측에서 한류의 드라이브를 공급자편으로 바꾸어 나갈 때가 되었다.

문화는 흐르는 물처럼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게 마련이다. 일본 문화에 미친 중국 문화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는 일본의 지식인들은 한국 문화의 영향력은 쉽게 수긍하려 들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한국 문화의 진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은 그들이 한국어를 알지 못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대일무역 역조보다 대일언어 역조 현상은 더 시급한 현안이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고교가 제2외국어 과목으로 일어를 채택하고 있으며, 정규 대학에서는 일어 일문과를 설치하고 있다. 그밖에도 사설 어학원에서 누구든 쉽게 일어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개인적인 노력과 상당한 비용을 요구하는 번거로운 일이다. 우선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설 어학원이나 교육기관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국어 교육은 주로 개인 교습에 의존하게 된다.

앞으로 일본에서 한류 열풍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려면, 그 기간작업의 조성은 한국어의 보급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한 나라의 국어를 모른 채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는 어려운 반면 한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문화를 우호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일본인 뿐 만 아니라, 재일교포 청소년의 90% 이상이 우리말 모른다는 사실은 이제 심각하게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일본 관서지역만 해도 우리말을 배우기를 희망하는 청소년이 2만명 쯤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작 우리말 교습처나 교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오사카의 한국 영사관에서 개설한 한국어 강좌가 30대 1의 경쟁률을 보일만큼 신청자가 쇄도했다는 사실도 한국어를 배우기가 어려운 저간 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여름방학에도 유스 웨이브가 개설하는 국제 청소년 봉사학교에는 일본에서 13명, 러시아에서 30명, 중국에서 5명의 해외교포 청소년이 참여하게 된다. 그들은 7박 8일 일정으로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배우게 되며, 동수로 참여하는 한국 청소년의 도움을 받아 한민족의 정체성을 찾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민간 차원의 노력보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한국문화와 한국어의 해외 보급에 적극 나서길 촉구한다.

/김은미.유스 웨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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