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부질없는 공상을 한다. 먼 훗날 기계문명이 끝없이 발전하면 로봇이 인간 앞에서 연극하는 날이 올까?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연극이란 원고지의 대사를 입력하여 똑같은 음색으로 되뇌게 하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 개개인들이 감성의 세계를 산책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종합공연 예술이기 때문이다.
3년 전 일본 오키나와 대학구내 극장에서 의정부 극단 ‘허리’가 공연한 무언극을 관람한 일이 있다. ‘허리 잘린 한반도’를 주제로 한 극이었는데, 공연중 장내는 일시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해설하는 사람조차 말을 잇지못해 객석의 한 중년부인이 마이크를 이어 받아 해설을 하여 무사히 공연이 끝났다.
뒤풀이를 위해 한 선술집에 모여 서로 얼큰해질 무렵, 그 중년부인이 신상발언을 시작했다. 자신은 현재 오키나와대학 교수지만, 일제시대 징용당한 한국인 2세이다. 우연히 연극을 관람하게 되었는데 한반도의 가슴 도려내는 서글픔에 자신도 깊은 감명을 받아 감히 동의 없이 해설을 하게 되었다는 해명이었다. 동석한 일행들은 몇 차례의 건배제의와 함께 밤이 깊도록 공연의 감동을 함께 나누었다.
그날의 연극공연은 비록 일본 땅이었지만, 우리가 한 핏줄임을 극적으로 보여 주었다. 제 아무리 IT산업이 발전한다하여도 설움에 복받쳐 입술을 깨물어야 하는 로봇은 없을 것이기에 연극은 역시 인간들의 자랑스러운 전유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근래 지역 연극계의 현실은 어떠한가? 현재 수원지역 연극은 경기도의 중심에서 한국연극의 한 축을 이루면서 지역문화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다. 특히, 80년대 ‘화홍소극장’, ‘수원예술극장’, ‘극단城 소극장’ 등을 통해 다양한 실험정신을 담은 작품들을 공연함으로써 지역 문화 생산의 원동력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90년대부터 소극장 문화가 극단의 영세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하나 둘 문을 닫고 마침내 극단들이 해체되는 상태에 이르고 있다. 정치·경제·문화적 자원이 철저히 서울 중심으로 편중되면서 지역 공연 현실은 더욱 더 열악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6년부터 시작된 ‘화성국제연극제’는 지역 연극인들의 연극에 대한 사랑과 지역예술에 대한 열정의 힘이 모아진 결과라 하겠다. 이제 주5일 근무제가 시작되고, 지역사회는 시민들의 다양한 참여 욕구를 수용해 나가야 한다. 이 시점에 소극장의 문화가 다시 살아 움직여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데 한 몫 담당할 수 있다면 매우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다.
/송기출 수원청소년문화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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