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경기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쿠르드족 오남매의 가슴 절절한 형제애

여기 한 쿠르드족 소년이 있다. 부모를 잃고 장남으로서 가족을 돌봐야 하는 12살 꼬마 가장 아윱. 어머니는 막내를 낳다 숨졌다. 밀수 길에 나섰던 아버지는 지뢰를 밟고 목숨을 잃었다.

아윱은 학교를 그만두고 돈벌이에 뛰어든다. 하지만 불치병에 시달리는 동생 마디의 약값을 치르고 나면 여동생 아마네에게 공책을 사주기도 빠듯하다. 설상가상으로 동생 마디가 수술을 받지 않으면 몇개월 못가 죽을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나온다.

결국 아윱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등짐을 지고 밀수행렬에 끼어든다. 밀수는 이란과 이라크 국경수비대의 눈을 피해야 하는 것은 물론 밀수꾼을 습격해 물건을 강탈하는 무장괴한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 게다가 사방은 온통 지뢰밭이다.

짐을 나르는 말과 노새조차 억지로 술로 취하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가 앞을 가로막는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이란계 쿠르드족 최초의 영화감독인 바흐만 고바디의 장편 데뷔작이다. 감독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것처럼 철저한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아끼며 꿋꿋이 살아가는 어린 쿠르드족 다섯 남매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안는다.

스스로를 돌보기도 힘든 어린 나이에 동생을 살리겠다고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는 애처로운 모습은 보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은 이란과 이라크의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국경마을 바네. 감독은 어린아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 전쟁이 평범한 쿠르드인의 생활을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란과 이라크, 터키의 접경지대에 흩어져살며 온갖 탄압과 시련을 겪고있는 쿠르드 사람들의 비극적인 현실을 날카롭게 증언한다.

영화는 실화에 기반을 둔, 거의 다큐멘터리나 다름없었던 28분짜리 단편영화 ‘안개 속의 삶’의 주인공이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확장하고 픽션을 가미해 제작됐다.

연기자들은 영화의 무대가 된 산악지대에 사는, 촬영에 들어갈 당시까지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1969년 이란의 고원지대 베인 출신의 쿠르드인. 고등학교졸업 후 라디오와 TV방송 일을 하던 중 영화의 매력에 사로잡혀 수도 테헤란의 영화학교에 진학해 영화에 대한 꿈을 펼쳤다.

키아로스타미와 모흐센 마흐말바프 등 이란의 대표적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연출을 배웠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눈물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공감을 이끌어내는 감성적인 연출력으로 제53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KING ARTHUR

인간적 고뇌·연민서 갈등 ‘아더 왕’ 내면을 발견하다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영화 ‘킹 아더’(KingArthur)로 23일 한국 관객들을 만났다.

‘카멜롯의 전설’(제리 주커)이나 ‘엑스칼리버’(존 부어만) 등 그동안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판타지와 모험을 바탕으로 한다면 ‘킹 아더’는 이보다 과거의 시간을 살았던 실존 인물들의 기록에 가까워보인다.

시대 배경도 전설보다 1천년 정도 앞선 BC 5세기. 줄거리도 아더왕의 긴 일대기가 아니라 그의 인생 중 한 단면에 집중돼 있으며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은 이미 성장한 아더가 15년간의 군복무를 마칠 무렵이다.

때문에 만약 ‘나쁜 녀석들’ ‘진주만’ ‘아마겟돈’ 등으로 유명한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의 명성이나 여름 블록버스터라는 기대만으로 극장을 찾는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듯하다.

전투 장면은 스케일이 크지만 으레 이런 영화에서 기대되는 장대한 서사는 찾기 어려우며 아더왕이라는 이름에서 기대되는 판타지도 실화라는 틀 속에 묻혀 있다.

영화는 아더라는 한 인간의 야망과 사명감 사이의 고민을 주된 갈등으로 내세우고 있다.

로마의 장교 아더(클라이브 오원)는 랜슬럿(이오안 그루푸드) 등 동료 기사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꿈에 부풀어 있다.

이제 전역증만 받으면 로마의 땅 어디든 무사통과가 가능한 상황. 하지만 모두 전역의 기쁨에 들떠서 술에 취한 어느날 밤, 아더는 제마누스 주교로부터 마지막 임무를 전달받는다.

색슨족에게 위협당하고 있는 영주 마리우스와 그의 아들 알렉토의 가족을 구해오라는 것. 알렉토는 장차 교황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는 중요한 인물이다.

다른기사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결국 임무 수행에 나서는 아더. 일행은 색슨족 일행을 따돌리고 북쪽 마리우스의 성에 도달, 이들과 함께 무사히 남쪽으로 내려온다.

하지만 진짜 고비는 이제부터다. 일행이 머물던 하드리안성을 색슨족이 포위해 오기 시작한 것. 아더는 기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뒤 혼자 색슨족들에 맞서기로 한다.

한국 팬들에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트로이’의 목마보다 엑스칼리버 이야기가 생략된 아더왕의 이야기가 덜 친숙하다는 데 있다.

게다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도 뻔한 스토리에 개성 없는 대사, 그다지 촘촘하지 못한 줄거리는 흥미를 돋우는 데 실패하고 있다.

‘머나먼 사랑’에서 안젤리나 졸리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클라이브 우웬이 아더역을, ‘러브 액츄얼리’ ‘슈팅 라이크 베컴’ 등에 출연했던 키라 나이틀리가 아더의 연인 기네비어역을 각각 맡았으며 ‘리플레이스먼트 킬러’나 ‘태양의 눈물’ 등을 연출한 안톤 후쿠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5세 이상 관람가.

■날으는 돼지 해적 마테오

“이 돼지 녀석들, 소시지를 만들어버릴 테다…” 여름방학을 맞아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 ‘날으는 돼지 해적 마테오’가 24일 개봉한다.

파란색 톤의 밝은 화면과 통통 튀는 느낌의 음악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듯 신이 나며 “이 돼지같은 돼지 녀석”이라는 식으로 돼지들이 서로에게 던지는 ‘자학적인’ 농담도 유쾌하다.

배경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별 가그플레인. 육지와 바다가 오염돼 모든 종족들은 하늘에 떠 있는 스카이랜드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해적을 꿈꾸는 돼지 비행사 마테오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돼지마을 오잉카. 해적 교과서를 지참하고 멋진 해적이 되려고 하지만 상당히 ‘어설픈’ 돼지들, 슈퍼마켓을 털러갔다 혼이 나고 배달 심부름을 하게 되는 등 ‘자질’이 의심스럽다.

그러던 어느날 이들 일당의 보금자리에 햄혹 왕국의 공주 ‘커틀렛’이 나타난다. 공주는 늑대 해적단 ‘울프비어드’에게 쫓기는 신세. 이들이 노리는 것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공주의 목걸이다.

우여곡절 끝에 목걸이를 빼앗아가는 데 성공한 울프비어드. 공주는 보물이 있는곳을 알려주겠다며 마테오 일행을 꼬시고 일행은 목걸이를 찾아 울프비어드를 향한다.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스토리의 부실’을 보강하기 위해 제작진은 TV시리즈 ‘외계인 알프’의 시나리오 작가 듀에인 카피지와 ‘포켓 몬스터’의 시나리오를 담당한 소노다 히데키 등의 해외 스태프들을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시키는 등 줄거리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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