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노을을 바라보며

나는 하루의 시간 중 황혼이 짙어지는 저녁을 좋아한다. 물론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는 아침햇살도 신선하지만, 서산 하늘을 붉게 물들이면서 내 가슴을 울컥 울리게 할 것 같은 황혼이 더 좋다.

저녁 무렵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서 퇴근할 수 있다는 기다림이 있다. 누구와 약속도 없지만 웬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설레임이 있다. 노을빛이 물든 어느 찻집의 창가에 앉아 차 한잔을 마시면서 붉은 황혼 속에 하루를 정리하는 맛이 있어 좋다.

어린시절 구슬치기, 딱지놀이, 숨바꼭질에 정신없이 놀고 있으면 저녁 밥먹으라고 부르시던 어머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어 좋다. 퇴근길에 오고가는 많은 분주한 사람들의 발길을 본다. 연인과 만나는 사람, 친구와 만나는 사람, 직장동료와 만나는 사람 등 사연도 제각각일 것 이다. 우리네 인생도 하루의 일과와 같다 할 수 있다. 그중에 하루를 여는 아침은 유아기이고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은 황혼기이다. 창가에 서서 황혼을 바라보며 하루를 생각하듯 우리의 삶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긴 것 같은 하루의 시간도 이내 황혼녘이 오듯 우리네 인생도 저무는 황혼이 곧 올 것이기 때문이다. 저무는 노을길을 따라 가야 할 집이 있듯이 우리 인생도 황혼길을 따라 가야 할 본향이 있을 것이다.

가야할 집이 있는 사람은 목적지가 분명하지만 가야할 집이 없는 사람은 목적없이 유리 방황할 것이다. 우리네 모두가 모여서 구슬치기하고 숨바꼭질하듯 즐겁게 기쁘게 노는데 정신 팔다보면 어느새 저녁이 되어 저녁밥 먹으러 오라는 어머니 목소리를 들을 때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생의 저녁때가 되어 돌아가야 할 집이 준비되어 있다면 멋진 인생을 마무리 할 수 있지만 돌아가야 할 곳이 없는 사람들은 인생을 마무리하기가 참으로 힘들것이다.

간혹 나는 동해안 보다는 서해안을 즐겨찾는다. 탁트인 먼 바다위에 낙조가 질때는 세상의 시름을 잠시 잊고 황홀경에 빠져든다. 노을빛이 비출때마다 미래를 생각하며 가야할 곳을 준비하기 위해 생각을 가다듬는다. 하루하루의 시간은 정말 귀하고 소중하다. 내 삶을 빼앗아 가는 어둠이 오기전에 귀한 영혼들을 사랑하고 복된 소식을 나눠야겠다. 어느덧 또다른 하루의 일과가 끝나가려 한다. 나의 창문을 열고 노을빛을 바라보며 크게 한번 호흡을 해본다. 가야할 본향을 준비하면서.

/정영태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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