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으로 딸을 보내고

“죄인을 맞으러 오신 주님 자비를 베푸시고 율리안나(김순호·25·여)에게 영원한 평화의 안식을 주소서….”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천주교 수원교구 오산인계성당 성전은 김기창 요셉신부 집전으로 고 율리안나를 하느님 품으로 보내는 미사가 올려 지고 있었다.

김기선 화성경찰서 민원실장(49)은 그토록 사랑했던 맏딸 율리안나를 가슴에 묻은 채 마지막으로 떠나 보내며 넋을 빼앗긴듯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늘 웃음꽃이 활짝 피고 화목하기만 했던 김 실장 가정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건 지난 91년 무렵.

중학교 1학년이던 해 꿈 많던 소녀 율리안나가 부신(副腎·곁콩팥)에 발병하는 갈색세포증이란 희귀병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몸져 눕고 말았다.

율리안나는 이듬해를 시작으로 2~3년에 1차례씩 수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병세는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식물인간처럼 혼수상태를 거듭하며 숨지기 전까지 눈물겨운 사투를 벌였다.

그동안 애써 모은 재산은 수억원에 이르는 수술비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여기에 빚을 보탠 거금은 김 실장에겐 억만금과도 같았지만 어려운 형편에서 동료들의 위로와 십시일반으로 건네준 성금은 큰 힘이 됐다.

“내가 살아 숨쉬는 한 순호를 아름답고 착한 모습으로 일으켜 세우는 게 부모된 도리가 아니겠느냐”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던 김 실장의 안타까운 처지를 말하던 한 동료 직원이 율리안나의 마지막길을 추도했다.

사랑하는 딸을 살리지 못하고 끝내 먼 곳으로 떠나 보내며 가슴으로 울어야 하는 김 실장의 애틋한 부정(父情)이 그의 곁에서 영원히 보듬어지길 바란다.

/j60@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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