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재배치 전략에 따라 철수한다는 뉴스가 있다. 한편에서는 자주국방의 기회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문득 삼국지의 ‘관우’ 생각이 난다.
‘관우’라는 장수는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긴 수염에 청룡도를 움켜쥐고 적토마에 올라 앉은 모습을 보면 범하기 어려운 위엄과 용맹이 물씬 풍긴다. 춘추라는 역사책을 탐독할 정도의 지식인이기도 했다. 사실 삼국지를 읽은 젊은이들에게 인기 조사를 하면 1~2위에 드는 장수가 관우다.
그는 야전사령관으로 촉(유비)의 형주를 다스리던 서기 219년 위(조조)의 번성으로 쳐들어갔다. 처음에 승승장구였다. 그런 기세라면 삼국의 판도가 달라질 정도였다. 천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조조마저 겁을 내 도읍지를 북으로 옮기려 할 정도였다.
이때 동오(손권)의 여몽과 육손이 관우를 방심케 하고 배후를 공격했다. 결국 관우는 손권과 조조 양쪽의 협공에 패하고 사로잡혀 맥성에서 처형당하고 만다.
관우의 죽음 ― 이는 삼국의 향후 움직임에 있어 중대한 분기점이기도 했지만 국가의 외교안보 면에서 전략과 전술이라는 문제를 새삼 생각해볼 여지를 보여준다. 즉 촉(유비)의 외교 안보 전략은 동오(손권)와 손을 잡고 위(조조)를 무찌른다는 것이었다. 동오는 촉의 동맹국이고 위는 주적(主敵)이었다. 이것은 적벽대전 이래 유비 진영의 불변의 전략이었다. 그런데 관우는 동맹국을 무시했다. 아니 지독히 깔보았다. 손권이 관우의 딸을 며느리로 삼겠다고 청했을 때 자존심을 내세우며 ‘어찌 호랑이의 딸을 개의 아들에게 시집보낼 수 있느냐’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동맹국(동오)의 입장 따위는 아예 무시했던 것이다.
관우는 명장이고 촉의 안보상 기둥 이상의 위치였다. 하지만 촉의 외교안보 전략을 결정하고 지휘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따라서 동맹국을 무시한 것은 개인적으로 자존심을 세운 일일지 몰라도 국가 전략에 따르지 않은 우(愚)를 범했다. 결과는 관우의 죽음에 그치지 않고 복수에 나선 유비마저 육손에게 대패하고 병을 얻어 죽게 만들었다.
전술이란 전략의 틀 안에서 이루어질 때 의미가 있다. 주한미군 철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관우같은 명장도 자기 주장을 내세우다가 실수를 했다. 재삼 동맹과 주적 관계의 전략에 대해 숙고해볼 일이다.
/나채훈. 역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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