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세계화를 위한 내적인 힘

최근에 출판물, 신문, 각종 서적들이 한글만으로 찍혀 나오고, 한글-한자의 논쟁에서 한글만 쓰기가 앞서 가자, 세계화를 등에 업고 한자를 배우자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여기에 영어 공용화론까지 거론되어 우리 말글이 또다시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정말로 필요한 것은, 정보를 빠르게 교환하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전문가의 육성이다. 우리는 외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그 나라 사람들도 모르는 토막 외국어를 사용하여 외교나 무역 협상에서 많은 불이익을 보았다. 불이익을 본 것은 온 국민이 매달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외국어 교육에 문제가 있었으며 이로 인해 전문가를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0년 간 영어를 배웠지만 미국 사람을 만나 말 한 마디 못하는 것은 영어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국내 대기업에서 한동안 한자 교육에 열을 올린 적이 있다. 한·중·일 동양 세 나라가 같은 한자를 쓰고 있기 때문에, 한자를 배워 두면 한·중·일 무역에 많은 도움을 주리라는 얕은 생각이 발단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동양 세 나라는 제각기 다른 글자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한자 망국론을 주장하다가 주음부호를 만들어 쓰며 지금은 간체자까지 나오게 되었고, 대만은 전래의 한자를 지키고 있다. 일본은 2차 대전 전 3,000여 자를 쓰다가 전후 1,945자를 제한하여 썼으며 지금은 일본 특유의 약자를 만들어서 쓰고 있다. 일본은 일본 글자의 결점 때문에 필연적으로 한자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한자를 쓰지 말자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아, 일본의 한자 폐지론자는 가나만으로 쓰자고 주장하는 이들과 로마자로 쓰자고 주장하는 이들로 나뉘어 있다.

유네스코가 국보 70호인 훈민정음을 전 세계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물로 인정하여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나라 밖에서는 대접을 받고 있는 한글이 왜 나라 안에서는 홀대를 받는 것일까. 우리는 언어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우리말과 글에 대해 긍지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가지고 세계화를 해야 한다. 우리 말글을 사랑하고 긍지를 가질 때 세계화를 위한 내적인 힘은 길러질 것이다.

/정동환.한글학회 인천지회장-협성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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