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부모님이 이렇게 키웠겠지

어버이날이다. 아무리 바쁜 세상이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부모님께 선물을 사드리고 식사 한 끼라도 정성껏 해드리면서 그간의 노고를 풀어드리는 날이다. 그러나 오래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나니 정말로 허전하다. 살아계실 때, 어버이날 사드렸던 중절모와 하모니카를 꺼내서 만져본다. 유품을 통해 아버지의 진한 체취를 맡으면 그리움이 가슴속에 저며 온다. 중절모는 아버지의 소중한 보물이었다. 치매 증세가 심하긴 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중절모를 쓰시는 버릇이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는데 큰 몫을 하였다. 다른 것은 까맣게 잊어버려도 모자만은 챙기셨기 때문이다. 하모니카는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하모니카를 만지작거리시면 정신이 곧 돌아온다는 신호이고, 하모니카로 노래를 연주하시면 정신이 돌아왔다는 신호였다. 하모니카 소리가 나면 우리 가족은 환호성을 질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이십 오년 동안 홀로 살아오신 아버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아들 셋 가운데 유난히 막내아들을 좋아하셨기에 아버지를 모시느라 노력은 했지만, 돌아가신 뒤에 생각해보니 후회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식은 서너 살까지만 부모에게 효도하고, 그 뒤는 애물단지’라고 말한 어느 어른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일까. 인간의 사랑은 남녀 사이의 사랑, 친구 사이의 사랑, 종교적인 사랑, 부모와 자식 사이의 피로 얽힌 사랑 등 여러 가지 사랑이 있다. 다른 사랑은 사귀면 사귈수록 가까워지는 사랑인데,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은 점점 멀어지는 사랑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떨어져 나오고, 결혼하면 부모의 곁에서 떨어져 나가고, 자식이 생기면 살기 바빠서 부모의 주위에서 떨어져 나온다. 그리고 자식을 길러보고 난 뒤에 후회한다. ‘우리 부모님이 나도 이렇게 키웠겠지…’하고. 그러나 부모님은 저 세상으로 가신 뒤이다. 인간이 바보스러운 것은 즉시 깨닫지 못하고 한 발짝 늦게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계시니. 직장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는데, 오늘은 아무리 바빠도 가족과 함께 처가에 다녀오리라. ‘세상을 살아갈 때, 한 발짝 빨리 깨닫도록 노력하자’는 다짐을 하면서.

/정동환.한글학회 인천지회장.협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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