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박물관장 자리

"나의 어렸을 때의 꿈은 외교관이었다. 그러다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담임선생님 권유로 생전 처음 듣는 고고인류학과를 지망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소위 유력한 과를 예를 들자면, 법과 의과 상과 등이 지원의 일순위거나, 조금 양보해도 영문과 사학과 등을 지망하는게 보통이었으나 웬지 새로 생긴 학과에 흥미가 쏠렸다.

그것이 나의 박물관인생의 첫 단추였던 셈이다. 대학 졸업후 30여년의 전문인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박물관장으로서만 실제로 십 수년이상을 보냈으니,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소위 성공하고 출세한 인생이랄 수 있겠다.

박물관의 역사는 크게 삼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수집과 보관의 시대로 19세기 시민사회의 등장까지는 이런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둘째는 전시와 홍보의 시대이다. 새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한 시민들은 이제 유물들을 더 이상 창고안에 가두어 두기를 바라지 않았다. 따라서 많은 전시를 통하여 미술품의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공유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서는 이러한 양상마저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제 시민들이 더 많은 것을 박물관에 요구하는 시대로 크게 변모하게 되었다. 즉 교육과 사교와 레저의 중심에 박물관이 서있기를 기대하는 때가 된 것이다.

박물관장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의 소유자가 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여러 가지 요건이 필요하겠지만, 박물관장은 박물관의 변천사가 말해주는 모든 변화를 다 수용할 수 있는 능력과 덕목을 겸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미술품의 수집과 관련된 숙련된 전문지식과 높은 도덕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 전시를 통하여 미술품을 일반에게 쉽고도 명쾌하게 알리는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하여, 박물관장은 뛰어난 심미안과 세련된 디자인 감각을 훈련받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

또한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이 있어야 하고, 사회교육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곤란하다. 사교의 중심에 나설 수 있는 매너와 예절을 갖추어야 하고, 박물관이 레저문화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행정을 책임지고 운영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여느 생산회사의 사장 못지 않은 경영감각이 필수적이다. 문화CEO가 되어야 한다.

/이종선.경기도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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