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청와대 편지- '답답합니다'

“노심(盧心)은 한마디로 초사(焦思)다.”(한 386 핵심참모의 발언) 이러한 보도가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답답합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대통령께서만 답답한 게 아닙니다. 대통령께서는 그래도 청와대의 영광을 누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민중은 더 답답합니다.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측근비리의 요지경속 실체는 무엇이며, 이라크 파병은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이며, 미군 한강이남 재배치는 또 무엇이며, 북핵은 어떻게 돌아갈 것이며, 신용위기가 위협하는 금융대란 조짐의 전망은 어떻게 보아야 하며, 민노총은 왜 반노 투쟁을 일삼는 것입니까.

부안 사태는 비단 부안 군민만이 아닌 민중적 불안의 요인이 되고, 제조업 분야의 공동화는 국민경제를 피폐화하고, 상인들마다 장사가 안된다는 아우성 속에 사회위기 수준은 더욱 높아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또 예컨대 대입수능이 말썽을 빚는 등 사사건건 왜 매끄럽지 못해 신뢰 추락을 자초하는 것입니까.

안희정이란 사람하고 청와대에서 정말 식사를 가끔 하는지오. 이를 자랑삼는 그 사람은 총칼 대신 노사모가 노란 목도리를 매고 한강 다리를 건너 5·16 정변후 40년만에 젊은 세대가 정권을 잡았다고 큰소리 친다는 데 맞습니까. 정권을 잡은 것은 자연인으로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님이고 정당으로 말하면 민주당입니다.(노무현당으로 열린우리당이 분가하여 민주당은 이제 야당이 된 세계 정치사에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만 당초의 법통은 그런 것 아닙니까) 어떻게 감히 안희정이란 사람이, 젊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다고 기염을 뿜어댈 수 있는지오. 뭘 잘했다고 말입니다. 코드가 그토록 대단한 건가요. 젊은 측근정치로 이스라엘을 위기에 빠뜨린 어리석은 왕 르흐브암이 생각 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께서 답답한 게 남의 탓으로만 생각하는지오. 내탓이라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되는 지 궁금합니다. 다 대통령님 탓입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회, 가장 강력한 야당을 만나서 정부가 힘이 드는 것’만은 아닙니다.

대통령 선거는 패거리로 해도 국정은 패거리로는 안됩니다. 김대중 정권이 실패한 연유가 코드, 즉 패거리정치를 한데 있잖습니까. 그 패거리들이 지금 감옥에 가 있습니다. 코드정치는 다르다고 무엇으로 보장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DJ 측근은 간곤한 민주화 투쟁의 역정에 섰던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의 대통령님 측근은 도대체 뭘 했던 사람들입니까. 선거공신이기 때문에 치부도하고 영화도 누려야겠다는 사람들은 단호히 잘라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듣는 욕은 아무리 먹어도 괜찮습니다. 그래야 대통령님이 살고 나라가 사니까요. 측근들의 ‘독만두’(일본에선 요즘 권력에 대한 아부를 이렇게 표현한다더군요)에 취하면 민중에게 욕을 얻어먹고 ‘독만두’를 버리면 민중의 지지를 받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통령님이 내년 4월15일 총선에서 안정세력을 얻기엔 무척 힘들 것 같습니다. 쉬운 길이라고 샛길로 가지 마십시오. 어렵더라도 큰길로 가십시오. 이것이 대통령님의 국정에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회’의 협력을 유도해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왜 편 가르기를 그리도 좋아 하십니까. 편 가르기가 사회 통합은 아니잖습니까. 청와대가 호남향우회를 왜 찾아다니는지오. 자신에게 좋은 것은 지역화합하고 나쁜 것은 지역감정이란 주관적 논리는 당치 않습니다. 지역이나 계층으로도 모자라 수도권 대 비수도권으로, 또 신행정수도지역(충청도) 대 비지역 등 이렇게 갈래갈래 갈라놓는 법이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신행정수도 문제엔 추후에 또 말씀 드리겠습니다)

대통령님을 공격하기 위해 이런 말씀을 하는 게 아닙니다. 민중이 존경하는 대통령을 갖는 것이 나라의 홍복이라고 보는 게 소신이니까요. 이런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어주시기를 바라는 뜻에 밝히는 충정입니다.

꼬일대로 꼬인 갖가지 현실 문제의 답답함이 다 대통령님 탓이라는 겸허한 마음으로 변화의 단안을 보여주십시오. 민중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으니까요.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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