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역에는 오현(梧峴)리라는 마을이 있다. 말 그대로 오동나무 고개라는 뜻에 걸맞게 흔한 공장하나 없고 농사만을 천직으로 알고 순박하게 살고 있는 전형적인 우리네 농촌마을이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 귀절이 어울리는 그런 곳이랄까.
그런데 이 곳이 겉보기에는 평온한 마을 그대로이나 주민들은 7년여 동안이나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며 태산 같은 걱정을 안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것은 96년부터 추진하는 국방부의 ‘군부대종합훈련장조성계획’이라는 국가사업으로 인하여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떠나야 하므로 앞으로의 진로와 생계 걱정이 이만 저만 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훈련장으로 편입되는 모든 토지를 조기에 수용하고 아울러 이주 및 생계대책을 제시하여야 함에도 7년여 동안 건축행위가 일절 제한되고 수용된다는 소문에 전혀 토지매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부대에서 극히 일부 매수하는 금액으로는 10평 팔아도 인근 지역 어디를 가나 단 1평의 땅을 사지 못하는 실정에 있다.
이에 삶의 터를 잃고 마을을 떠나야하는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파주시, 경기도, 25사단, 제1공병여단, 제1군단, 육군본부, 국방부, 각 정당, 청와대 등에 방문, 탄원, 진정을 통하여 7년여 동안이나 생계대책을 호소하여왔다.
이런 딱한 사정을 알기에 지역의원으로서 주민들과 함께 관련기관,부대등을 방문하고 국방부에 재차 민원을 제기한데 이어 국방부장관에게 지역주민을 대변한 호소의 글도 올렸었다. 주민과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뛰어 다녔으나 이에 대한 답변은 “노력해 보겠다”는 1군단 훈련장 담당관을 통한 몇 줄의 원론적인 답변 뿐이었다. 이어 국회의 국방위원회 소속 18명의 국회의원들에게 호소의 글을 모두 올렸으나 지금까지 이렇다 저렇다 한마디 없다.
700여명의 순박한 농민이나 지역을 대표하는 기초의원의 절박한 호소는 이렇듯 옆집 개소리보다 못하단 말인가?
손에 총을 들고 나라 지키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최신식 무기를 도입하고, 군부대 막사 등을 현대화 하는 것만이 국방의 최우선 정책이고 그런 국군을 위해서 자자손손 대대로 지키던 고향을 내주고 떠나야하는 힘없고 순박한 농민들은 죽든 말든 예산부족과 규정만 따지는 것이 국방부가 지향하는 국민을 위한 국방정책이란 말인가?
그들이 국방부 공무원의 형제, 가족일지라도 이렇듯 무성의한 답변과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였을까?
우리나라는 가장 상위법이 [떼법]이라는 웃어넘기지 못할 말이 있다. 그래서 민원 해결이 안 되면 폭력시위와 집단행동으로 치닫는 것이 작금의 행태가 아닌가. 정말 이 순박한 농민들이 국회의사당, 국방부, 청와대 등에 집단으로 몰려가 시위하고 집단행동을 해야만 민원에 대한 성의가 보여 질까?
이제는 바뀌어야 된다. 힘 있는 사람을 통 할줄 모르고 시위나 실력행사를 할 줄도 모르고 7년여 동안이나 건의하고 호소하는 힘없고 순박한 농민들의 절규어린 소리는 더욱 성의 있게 해결할 자세가 필요하다. 힘없고 순박한 농민들도 때에 따라선 무섭게 돌변하여 실력행사에 돌입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이제 [떼법]이라야 통하는 웃지 못할 현실을 바꾸어야 할 때다.
/김영기.파주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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