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속 여주인공들의 예술적 기량을 칭송하기 위해 흔히 ‘프리 마돈나’라는 호칭이 사용 되는데 Primary Women 즉 첫번째 여자라는 사전적 의미와도 같이 오페라에서 여주인공의 역할은 공연 전체의 작품성과 완성도를 가름할 정도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부분이 프리마돈나의 처절한 희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데, 이러한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라고 하는 비극의 장르가 정착되기까지에는 오페라 도입 초기부터 스토리 구성의 대부분을 그리스 신화 내용이 빈번히 인용되면서 특히 죽음과 자살에 대한 소재가 성행하게 된다.
이를 반증하듯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 무려 109명의 신들이 자살했거나 자살을 시도했다고 전할 정도로 스스로의 죽음 그 자체를 영웅적 행위로 미화시킨 영향이 무엇보다 켰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라죠콘다, 리콜렛토, 나비부인, 투란도트 등 청순가련한 여주인공 스스로 자신의 몸에 비수를 꽂아 생을 마치는가 하면 페로달, 주링자 밀러, 일트로바 토레에서는 독약을 마시고 오페라 대미를 극적으로 마감하기도 한다.
이중에서도 베리즈모(Verismo)운동이 한창이던 19세기말 낭만적이면서 탐미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현실세계를 풍자한 푸치니의 토스카에서는 여주인공인 토스카가 비밀 경찰인 스카르파아의 음모와 계략에 빠져 그녀의 진정한 연인 카바라도시 마저 잃고 절벽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종말로 구성되어 있다.
오페라 토스카의 시대 배경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서와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오랜 옛날이나 지금까지도 인간의 삶과 죽음만큼은 개인의 희로애락이나 신체적 수명한계의 범위를 넘어 그 시대의 사회상과 역사성을 대변할 만큼 중요한 시사적 의미를 찾고있는 것에는 어느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하나 부러울게 없어만 보였던 어느 재벌 총수의 죽음이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것도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를 죽음으로 까지 몰고간 것인지 간접타살이라는 세간의 비판과 함께 연일 애절하고 아타까운 사연들이 주홍글씨처럼 그 회장 주검 뒤를 맴돈 것을 기억 할 것이다.
일면식도 없었던 그의 죽음이었지만 우리나라 경제 재건과 대북사업의 프리마돈나로 무거운 현실의 등짐을 짊어진 채 세상을 달리해야 했던 한 인간의 마지막 삶의 비애가 시대와 배경은 달라도 사랑에 대한 박탈감, 그리고 음모와 배신에 몸서리치며 스스로의 몸을 던진 토스카의 절박함과도 그리 무관치 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수많은 오페라 프리마돈나의 비극적이고 허황한 죽음의 결말과도 같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척박한 무대는 그렇듯 애닯고 절절하게만 느껴진다.
프랑스 비평가 르네지라르는 역사적으로 사회 내부의 긴장을 줄이고 집단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집단내 특정인의 희생양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주장을 폈지만 과연 그의 안타까운 희생으로 우리사회의 결속력이 더욱 강화 되고 그간의 대립과 긴장이 완화될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나로선 의문투성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포플리즘적 양비론에 빠져 집단의 주장과 집단의 이기로 그를 정신적 죽음으로 몰고 간 간접타살의 공범들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삶이 결코 오페라와 같은 예술은 아니다. 그렇듯 그의 갑작스런 죽음 또한 르네지라르의 논리와 같이 희생을 통한 극적 반전을 위함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똑같은 비극적인 삶이었지만 오페라 주인공 토스카에 대한 예술적 감동이 되었던 혹은 2003년 8월 한국사회가 사산해 놓은 그 회장 죽음에 대한 슬픔과 추모의 마음이 되었건 그 모두가 그간 우리들의 편협하고 수축된 의식 속에 새로운 감각의 양분이 주어지듯 또 하나의 내일이라는 작품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음엔 틀림없으리라.
/김종구.경기도율곡교육원연수원 예절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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