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맛있는 말, 맛없는 말

조선 왕조에서 으뜸가는 청백리를 말하면 단연 황희 정승을 꼽을 수 있다. 정승만도 무려 24년을 지냈으면서 초가집에서 살았다. 태종조에서 시작하여 네 임금을 섬긴 그가 명상(名相)으로 평가받는 것은 조정의 공론을 잘 이끌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웃에서 싸움을 한 두 사람이 시비를 가려 달라며 찾아와 털어놓는 자초지종을 듣고 처음 말한 사람에게 ‘네 말이 옳다’고 하고는 다음 말한 사람에게 역시 ‘네 말도 옳다’고 하자, 부인이 ’무슨 그런 말씀이 있느냐’는 말에 ‘부인 말씀도 옳다’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뒤 황희는 두 사람의 감정이 수그러 질 즈음에 ‘나 같으면 이러 이러 하겠다’고 말하여 화해를 시켰다는 것이다.

조정에서도 그는 이처럼 남의 얘길 충분히 잘 듣고 어느 시기가 되면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법으로 공론을 정하곤 하였다. 그러나 결코 주관이 없는 무골호인인 것은 아니다. 태종이 양녕대군을 폐세자할 땐 목숨 걸고 반대 주청을 꺾지않았던 분이다. 이를 사서(史書)가 ‘관후정대(寬厚正大)한 인품’이라고 기록한 것은 요즘 말로 민주주의적 사고력(思考力)을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사회생활이 옛날처럼 단순하지 않아 여러가지 문제점이 많이 생겨 말들이 꽤나 많은 세태에 살고 있다. 그 많은 말들은 남의 말을 듣기위한 것이기 보다는 자신의 말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남의 말을 듣지않고 자기 말만 앞세워서는 결코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인식시킬 수가 없다. 이런데도 서로가 자기 말만 우기다 보니 공연히 말들만 더 더욱 범람해진다.

필자 역시 남의 말을 들어 수용하기 보다는 내 말을 먼저 수용해주길 바라는 편이지만 정말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는다. 예가 될진 모르겠으나 음식을 가리지 않고 뭣이든 맛있게 먹는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하지만 맛을 가릴 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기왕 음식을 대하면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전의 가르침이다.

어렸을 적에 밥상 머리에서 이건 맛이 없고 하며 반찬 투정을 하면 아버지는 ‘맛이 없으면 속으로만 생각하고 그래도 먹어야지, 맛 있게 먹는 사람에게까지 언짢게 해서는 안된다’며 타이르곤 하셨다.

말도 음식 같다면 남의 말을 듣는 게 맛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는데도, 듣기좋은 맛있는 말만 들으려 하고 듣기싫은 맛없는 말엔 아예 귀를 막는다. 그러는 사람들도 남에겐 맛있는 말은 못하고 맛없는 말만 하면서도 자신은 맛있는 말만 듣고싶어 한다.

세상에는 맛있는 말도 있고 맛없는 말도 있게 마련이다. 언어의 편식증은 음식의 편식증보다 더 위해가 크다. 음식의 편식증은 개인의 건강문제에 국한하지만 언어의 편식증은 사회의 건강문제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말은 많으면서 막상 해야할 말은 권력이나 금력이 두려워 입을 봉하는 비굴함도 요즘 세태가 보여주는 병폐가 아닌가 한다. 이런가 하면 해서는 안될 말같지 않은 말도 사태를 이룬다. 민주사회의 성숙된 지도력, 민주사회의 성숙된 시민의식은 말 같은 말과 말 같지 않은 말을 잘 가려, 맛있는 말이든 맛없는 말이든 말 같은 말은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부드러움 속에 강단이 있고 기다림 속에 결단이 있었던 황희 같은 분의 말문화를 생각해 본다.

/이지현.(사)한길봉사회 경기도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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