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로 시작되는 ‘동심초’는 나에겐 추억이 깃든 곡이다. 대학때 미팅에서 만난 파트너의 영향으로 가곡을 좋아하게 된 나는 술 한잔 마시고 취기가 돌면 으레 ‘동심초’를 흥얼거렸다.
지난 8월 30, 31 양일간 예총 수원지부 (회장 김훈동)가 주최로 ‘해피 수원(Happy Suwon) 페스티벌’이 만석공원에서 개최되었다. 두달 전부터 지역의 예술인들이 성심껏 준비했던 해피 수원 페스티벌은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행사였다. 때문에 행사를 잘 치르기 위해서는 그 날의 기후가 매우 중요하였다.
그러나 첫째날인 8월 30일, 아침에 맑았던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오후 1시가 지나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예측할 수 없는 게릴라성 폭우가 연일 계속된터라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며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빗줄기는 점점 거세져 갔다.
공연시간이 다가오며, 행사를 강행할 것인가에 대한 스텝들의 고민이 무게를 더하였다. 일정을 연기하게 되면 출연진들의 스케줄과 시스템 임대 등으로 경제적인 손실이 클 수밖에 없는 공연예술의 특수성 때문에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었다. 더욱이 이번 행사의 빠듯한 예산을 감안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결론이었다.
공연여부를 묻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 스텝회의는 시작되었고, 1시간 이상의 난상토론 끝에 공연을 강행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유인즉슨 예산손실도 손실이지만 공연일정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이며,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수원예총의 의무라는 생각에서였다. 공식적인 의전 행사만은 다음날로 연기하고, 문의해온 내빈에게 연락을 하였다. 뜻밖에 한국예총 이성림 회장은 관객이 한명만 있어도 참석하여 행사를 축하해 주고 싶다고 했다.
교향악단 연주를 위하여 무대 위에 천막을 치고 관객을 위한 우의를 준비하였다.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 관람객들은 주위를 서성거렸고, 출연자들은 악기를 조율하였다. 무대 위에 고인 물을 닦고 있을 무렵, 이성림 회장이 도착하였고 예정된 시간이 10분 지나 공연은 시작되었다. 조명에 색깔을 입어 반짝이는 빗줄기가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을 타는 듯 하였다. 우의를 입은 사람, 우산을 든 사람, 서 있는 사람, 젖은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 등 공연을 감상하는 관객의 모습이 진풍경이었다.
그러나 어느 때 보다도 관람객들은 한결같이 진지하였다. 솔리스트가 동심초를 부를 때는 옆에 앉은 관객의 숨소리마저 고요하였다. 오로지 빗줄기 소리와 음악뿐이었다. 비 오는 날의 동심초는 빗소리마저 애달프게 만들어 내가 대학시절 만났던 동심초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무엇인가 그 이상의 깊이로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매혹적인 곡조 때문인지, 아니면 빗줄기 때문인지 관객 또한 동심초의 선율에 모두 몰입하였다. 언제 이렇게 한곡의 노래가사와 곡조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매료시킬 수 있단 말인가. 아마 그 자리에 모인 400여명의 관람객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예정대로 공연하기를 참 잘했구나 생각하였다.
그리고 예술을 생각하였다. 비록 많은 관객이 동참하여 화려한 공연을 펼치지는 못하였지만, 이렇듯 진한 감동으로 각자의 닫혀진 마음을 여는 공연이 몇 차례나 될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을 지닌 예술의 가치를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공연이 끝날 무렵에는 모두가 친구였다. 비오는 날밤 들었던 김성태 작곡의 ‘동심초’가 여전히 내 귓가에 맴돈다.
/이석기.수원예총 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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